HTP6 좌담회

HTP2 좌담회

정주, 서촌, 도시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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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상해(성균관대학교), 김승회(서울대학교), 김광현(서울대학교), 송인호(서울시립대학교), 최춘웅(고려대학교)’

1. 주제의 취지

이상해 : 아름지기 공모전은 젊은 건축가와 학생들이 우리 주거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한옥을 주제로 해서 작년부터 시작하였다. 작년에는 한옥 자체에 집중을 둔 공모전을 했다면, 올해는 도시와 좀 더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모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작년 공모전의 골자는, 한 필지에 있는 기존 한옥 건물을 바탕으로 해서 그 건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하나의 설계안을 제안하는 것과, 필지에 있는 기존 한옥 건물은 무시하고 터와 주변과의 관계를 해석해서 설계안을 제안하는 것, 두 개 중에서 하나를 응모자가 선택하여 설계안을 제안하도록 했다. 심사 총 책임을 맡은 조병수 선생은 개념적인 것보다 실제로 집이 어떻게 지어질 것인가에 대해 응모자들이 관심을 갖고 도면을 그리도록 요구해 보자고 제안했으며, 공모도 그렇게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상 의도한 바를 만족시키는 안은 적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모자 수나 작품 제출 수에서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올해는 김승회 선생이 진행 총괄과 심사를 맡게 되었는데, 올해의 공모전 주제는 한옥 건물 자체보다는 한옥과 주변 집들과의 관계, 그리고 한옥과 길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시대의 도시 정주에 대해 한옥을 바탕으로 해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먼저 김승회 선생께 공모전 주제 설정의 취지에 대한 견해를 밝혀 줄 것을 부탁드린다.

김승회 : 우선, 아름지기가 추구하는 꿈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름지기의 정신인 ‘아름다운 우리의 것을 잘 지킨다’ 를 돌이켜 생각하면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환경도 있지만 그 속에서의 삶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북촌의 경우, 훌륭하게 진화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원래 머물러 살던 삶이 오히려 소외되는 현상도 있고, 앞으로 우리가 새로운 도시의 진화를 생각할 때 거기에 머물러 있던 삶을 어떻게 유지시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점에서 이번 과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지금 머물러 사는 삶과 새로 이식되는 삶이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는 서촌-그곳은 재개발계획과 기존 것을 보존하자는 계획이 공존하는 곳이다-을 택하여 거기에 있는 한옥들, 한옥과 한옥 사이에 있는 낡은 집들을 대상으로 그 속에서 공간들이 어떻게 진화되고 그 속에 닮긴 삶들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랬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단어는 삶의 지속성 혹은 연속성이다. 우리는 일상이 지속된다고 하는 믿음 속에서 삶에 뿌리를 내리고 마을과 이웃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사회는 형성된다. 그러나 오늘날 섬과 같은 집이나 고립된 단지를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삶의 지속과 연속을 배려하지 못한 채 우리의 도시를 설명하다 보니 결국에는 파편의 미학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 염두에 둔 또 한 가지는 정주의 회복, 머물러 사는 삶의 회복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마을이 지속성을 가지고 진화하고, 연속성을 가지면서 관계를 맺는 체계를 회복/창조해야 할 거라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서촌의 대지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맥락이나 도시의 여러 정황들을 참가자들이 성찰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제안들을 찾기를 바랐다. 그 제안의 방법은 기존의 한옥이나 그곳의 패브릭을 존중하는 전통적인 유형학적인 수법이 될 수 있겠다. 또한 비록 래디컬하더라도 진정한 성찰 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새로운 주거 형식을 던져도 괜찮을 것이다. 미래의 건축가들에게 정답보다는 이 시대의 정주 형식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듣고 싶다.

이와 같은 취지로 서촌의 한옥과 한옥 사이에 있는 몇 개의 터들이 선정되었다. 그 속에서 머물러 사는 삶이 포함되는, 도시의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는 주거+α 공간에 대한 제안을 기대하고 있다.

2. 이 시대의 정주 형식 혹은 도시 정주


이상해 : 사실상 오늘 좌담회는 이번 공모전 응모자들에게 일종의 지침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김승회 선생의 말씀을 바탕으로 좌담회를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것은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첫째,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란 관점에서 정주, 즉 정주 형식이나 도시 정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설정을 위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번 공모전의 대상지인 서촌이 가지는 장소적 의미와 도시적 맥락 등에 대한 것이다. 셋째, 지금까지 생각한 것들을 토대로 서촌의 필지를 이번 주제인 '한옥과 한옥 사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도시의 필지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넷째, 앞선 논의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공모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 좋을까를 이야기했으면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공모전의 주제인 ‘한옥과 한옥 사이, 정주를 위한 집과 길’로 돌아와서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오늘 좌담회를 마치겠다. 먼저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도시의 정주 형식 또는 도시의 정주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김광현 : 김승회 교수가 쓴 과제의 지시문은 사람들이 어느 일정한 곳에 자리 잡고 살아야 한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대도시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있다. 현대의 대도시는 넓고 좁은 의미에서 모두 ‘유목’하며 살아가며, 밥도 거의 밖에서 먹고, 잠도 밖에서 자는 경우도 제법 있다는 것이다. 수시로 움직이고 수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느새 도시의 유목민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왜 이 과제에서는 정주를 강조하고 있는가. 물론 정주가 불가능하다든가 의미가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단지 왜 ‘정주’를 ‘회복’해야 되는가에 대한 일차적인 의문이다. 회복이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되찾음인데, 잃어버리게 된 배경과 조건을 묻거나 답하지 않은 채 정주를 회복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논리의 비약이 따를 수 있다. 왜냐하면 정주하며 머물러 살 수 없는 조건을 가진 도시민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촌을 보더라도 다 자기 집은 아닐 것이고 어딘가로 곧 떠나야 할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여러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군을 형성해서 불협화음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이 오늘날의 가장 일반적인 해일 텐데, 정주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오랫동안 붙박이로 살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손도 만들고 또 그 자손들도 계속 거기서 삶을 유지해야 하는 형식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는 오늘날의 도시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알게 모르게 오늘날의 삶의 조건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더구나 ‘오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란 측면에서는 정주를 폭넓게 봐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특히 주제가 한옥과 한옥 사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한옥 자체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옥의 개념은 이미 정주라는 것에 깊이 뿌리박고 있고, 아파트의 삶과 비교했을 때 한옥에 산다는 것은 한 동네에 뿌리 깊게 살아가는 모습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 주변은 어떤가? 주변에 있는 삶의 모습에는 정주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들도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래서 도시의 정주 형식을 말할 때, 이 과제와는 반대 지점에 있다는 의문이 먼저 든다.

이상해 : ‘일정한 곳에 자리 잡고 사는 것’이란 관점에서 정주를 지속성/연속성과 연관시켜 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 봤을 때 과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고 하는, 자기 존재와 관련된 측면에서도 정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 문제는 기본적인 개념에 속하는 부분이니까 이 두 가지를 간단하게 짚어 보고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갔으면 한다.

김광현 : 정주란 일정한 곳에서 사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정주냐 이동이냐로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 우리의 삶도 그렇다. 사실 우리의 하루를 보면 대개 이동을 훨씬 많이 한다. 이런 식의 구분으로 볼 때 정주는 ‘장소’와 뿌리 깊게 연관을 맺고 있음이 훨씬 강하고, 이동은 오히려 움직이게 만드는 ‘도시’라는 개념과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도시를 흐름의 총 집합체라고 본다면, 도시가 정주를 하지 못하고 이동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김승회 교수가 더 깊은 뜻으로 제안했겠지만,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상해 : 영어 단어 'Settlement'의 개념과 연관해서 말씀해 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최춘웅 : 방금 ‘도시라는 배경이 정주를 어렵게 만드는상황이 아닐까’ 라는 김광현 교수의 말씀은 내가 자주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들과도 관련 있는 것 같다. 도시 속에서 정주한다는 것을 머물러 있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왠지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과 연관이 생긴다. 도시 자체가 유기적이고, 또 대부분 활발한 도시는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반 이상이 다른 데서 와서 거쳐 가는 곳에 가깝다. 그래서 도시 속에서 정주한다는 것은 잘못 해석할 경우, 그것은 모순적이지 않은가, 도시 속에서 건물과 사람 중 무엇이 더 지속적일 수 있는가, 실제로 오랫동안 거주하는 것이 중요한지 아니면 장소란 측면에서 잠시 거쳐 가도 자신의 고향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한지, 등을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도시라는 배경 속에서 사람과 건축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정주의 의미를 시간의 개념보다는 사람과 건축과 도시 사이에 진정한 생산 활동이 있는지, 따라서 사회적으로 지속성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고, 따라서 settlement라는 번역에 habitat의 의미가 더해졌으면 한다.

3. 정주의 개념


이상해 : 단어 '정주'의 정의해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야기가 길어지면 곤란하겠지만, '정주'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데, 이것을 일종의 고정된 것으로만 파악하는 것보다는,좀 더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시대에 따라서 혹은 정주하는 방식에 따라서 다를 수 있는 정주의 정의를, 너무 고정된 형식으로만 파악해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시대에 도시에서 정주하는 방식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주 형식의 회복을 강조하는 것이 마치 과거의 정주 형식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변하고 있는 정주 형식을 새로운 정주 형식의 대두로 볼 것인가라는 관점에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긴 역사 속에서 사회의 변화는 항상 있었던 것이고 그 속에서 정주의 개념은 계속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지, 이야기했으면 한다.

송인호 : 정주라는 것은 장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농경의 삶은 정주이고, 유목의 삶은 정주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원칙 없이 이동하지 않는다. 자연의 큰 흐름 속에서 계절에 따라 움직인다. 이동할지라도 장소와 관계를 맺으며 순회한다면 정주라고 부를 수 있다. 또, 정주(定住)할 때 ’주’자는 dwelling의 의미지만, 기둥 주(柱)자여도 좋을 듯싶다. 유목민들의 ’게르’의 건축 형식은 결과적으로 땅하고 하늘과의 관계를 표상한다. 바라건대 장소와의 깊은 관계가 외연으로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이상해 : 중요한 이야기다. 'Settlement'를 제목으로 한 책들 속에는 우리가 말하는 이동식 주거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를 들어 유목민의 ’게르’처럼, 물리적인 구조물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지므로 이것을 정주라고 볼 수 있느냐 반문할지 몰라도, 유목민들에게 게르 자체는 장소가 옮겨지더라도 공간 사용의 측면에서 한 장소에 정착하여 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호텔의 방 하나도 투숙객에 따라서 그곳을 사용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것도 곧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연관되는 것이다. 그런 것까지도 포함해서, 어디에 중심을 두고 정주를 이야기할 것인가 할 때 몇 가지 중심들, 즉 장소나 사람과 같은 여러 가지들과 상호관계를 지으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김광현 : 정주는 폭이 넓은 개념이라서 유목과 분리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몽골의 게르도 그렇지만, 이동을 하더라도 땅과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목초가 있는 곳을 따라서 어떤 함수관계를 가지면서 움직이는 것이지 혼자 멀리 길 잃은 양처럼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 형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몽골 유목민의 삶도 넓은 의미에서는 정주를 개입한 유목의 삶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2~3년 후에 어딘가로 떠난다고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유목이다. 순수한 의미의 정주는 이제 대도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주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유목을 전제로 한 정주 또는 정주를 전제로 하여 움직이며 사는 유목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텍스트 자료에는 정주의 회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정주의 회복. 일정한 곳에 자리 잡은 삶. 또 한옥이란 이미지나 또 다른 요구 사항들을 보면, 이번 주제의 정주는 일반적인 의미의 정주보다는 특별히 해석된 정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텍스트를 읽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주를 폭넓은 개념이 아니라 장소나 고정된 곳에 붙박이로 어느 정도 살기를 요구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정주는 오늘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정주가 아니라, 특수한 일정한 계층의 주거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4. 정주의 회복


이상해 : 김승회 교수님이 말씀하신 ‘정주의 회복’은 ‘삶의 방식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 혹은 아름다운 삶과 같은 삶의 가치를 상실한 채 현대인들의 삶은 이어진다. 적어도 건축하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부분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는데, 이것을 정주의 회복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제안자인 김승회 선생이 정리를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자.

김광현 : 내 의견은 그것과 반대다. 정주의 회복이 삶의 방식의 회복이라면 바꾸어야 할 반대쪽의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이라는 뜻일까? 그렇게 된다고 문제가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김승회 : 정주를 제목으로 붙인 건 잘 한 것 같다. 정주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설계하는 건축가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반갑다.

최근 『한국은 난민촌인가』 란 책을 읽었다. 책에 의하면 우리는 근대화 이후 거의 난민처럼 살아왔고, 1980년대 서울 시민의 경우 한 집에 머무는 평균 시간이 1년도 채 안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삶도 점점 달라지고 있는데, 한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분명하다. 근래 건축주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제 좀 머물러 살고 싶다, 그만 난민이 되고 싶다‘고 하는 근원적인 욕구를 느낄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제일 살고 싶은 동네로 부암동이나 서촌 지역을 꼽는다. 정주의 형식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록 다양한 삶의 형식들이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형식을 다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장소와 관계돼서 삶의 방식을 지켜야 될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게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파편의 미학, 유목민의 미학에서 조금 더 나아가 다시 정주의 미학을 생각할 시대가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김광현 교수께서 정확히 지적하셨는데, 여기서는 어느 정도 지향성이 있는 정주가 맞는 것 같다. 더군다나 우리가 다루려는 곳은 서촌이다. 그러므로 아까 송인호 교수께서 정확하게 정의해 주셨듯이 장소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형식이 매우 중요하고, 그것을 위한 물리적 건축 공간에 대한 논의가 우리사회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5. 서촌이 가지는 의미


이상해 : 그러면 이제 서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정주의 개념을 서촌에 적용시켜 보자. 서촌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북촌이 참고가 될 수 있겠는데, 송인호 선생께서 말씀해 주면 좋겠다.

송인호 :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 율곡로 위쪽을 북촌으로 한정하고, 이에 견주어 소위 경복궁 서측 지역을 서촌이라고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돈의문 소의문 안쪽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어서 혼동의 여지가 있으나, 현재 서울 도심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 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웃대 또는 우대라는 지명이 있다. 높은 지역, 물길이 발원하는 곳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상대적으로 아랫대는 대체로 오간수문에서 광희문 부근의 낮은 지역을 가리킨다. 도성안의 서북쪽을 웃대, 동남쪽을 아랫대로 이야기하면, 그 이름에서 지형과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서촌을 역사지리적인 공간속에서 인식해야 한다. 북촌도 그렇지만 서촌이라는 지역은 장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이다. 인왕의 능선, 그곳에서 발원한 백운동 물길과 같이 지형의 굴곡이 경관으로 드러나 있는 지역이다. 또 이곳은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이후 장동 김씨 문중 등 경화사족의 세거지였으며,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최고의 문예가 꽃피었던 지역이다. 한편으로 중인들의 삶과 문학이 뿌리내린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서촌은 지형적으로 특별한 곳이며, 동시에 오래된 삶과 문화에 대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상해 : 송 교수님의 말씀을 다른 두 개의 관점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소위 ‘웃대’라고 하는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일구어 낸 문화를 현대와 연관시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웃대’라는 터가 사람이 살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란 관점에서, 살만한 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지금은 또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관점은 서로 다른 것으로 봐야 한다. 물론 정주를 결부시켜서 이야기할 때 어느 쪽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는 건축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김광현 : 오늘날의 서촌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한옥이 좀 많아서 그렇지 매우 특별한 한옥의 지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옥을 빼고 거기에 다세대 주택 같은 것을 짓다 보면 필지의 형식은 다른 동네와 그렇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한옥이 많이 남아 있어서 관심을 많이 받지 않나 생각한다. 지나친 표현인가? 그런데 이 동네는 굉장히 좁은 골목이 많고, 집들이 큰 길에 면해서 각각의 통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손가락처럼 클러스터를 이루며 하나의 길로 들어서면 가지처럼 뻗어서 그 길을 공유하기도 하고, 또 소필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막다른 골목의 묘미랄까, 이런 것들이 꽤 많이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까 중간에 불쑥불쑥 2층, 3층짜리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선 데는 그렇지 않은 필지보다 불협화음 같은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또 필지를 합필에서 쓰는 경우가 있어서 옛 길들이 망가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이 서촌을 형성하는 집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에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장소의 형식이라든가 오래 전부터 내려왔던 것들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가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변동도 가능한지 그게 전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특징이 그러한 그곳에 머물러 살아야 한다면, 적어도 물리적으로 특징이 유지된 상태에서 만들어져야 할 텐데, 그게 정말 가능하고 그런 이유로 그것을 요구하는 건지 궁금하다. 지금 서촌에 있는 한옥들은 오히려 물리적으로 불협화음을 이루는 구석이 많다. 지형도 잘 안 맞고, 현대의 앙상블도 이루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것들이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변경되고 수정되고 때 묻은 채 내려왔기 때문에 눈에 잘 안 띈다는 것일 뿐이다. 나는 건축가의 세심한 눈으로 계측되고 구성된 단면의 감각이 그것을 구제한다고 믿지 않는다. ‘과거에 있던 것들은 다 잘 되고 오늘날의 것은 무언가 이질적이고 파괴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과거는 아름다울 가능성은 많지만, 과거가 곧 아름다움을 모두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해 : 그것은 건축 형식과 연관된 이야기일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김승회 선생이 생각한 게 있을 것이다.

송인호 : 장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삶의 형식을 정주라고 정의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장소는 지형 또는 건축 형식, 그리고 그 곳에 담긴 이력 또는 기억으로 묘사된다. 우선 서촌의 지세와 도시 조직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웃대를 인왕의 능선으로부터 대개 종교다리(현재 종교교회 부근)까지로 한정하기도 하는데, 공모전의 대상지는 적어도 그 정도의 맥락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 대상지 자체는 경사가 거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대상지는 서북쪽으로 인왕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 낮아지는 지형의 구조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위상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땅과 관계를 맺는 장소 만들기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멀리는 18세기 정선의 장동팔경 그림에서, 가까이는 옆 골목의 20세기 청전 이상범의 화실에 이르기까지 문화 적층과 기억에 대한 학습과 존중이 필요하다.

이상해 : 땅을 읽어내는 것은 응모자들 나름의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서촌에 관한 인문학 분야의 글도 많고 하니까.

6. 주어진 필지


김광현 : 이곳의 수많은 집을 앞으로 건축가가 다 짓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을 때 마크로(macro)하게 보는 눈을 갖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특정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세밀하게 읽어갈 수 있겠지만, 일반해는 아닐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일은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면서도 실제 생산되는 것들은 그렇지 못하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에 너무나 불편한 제도,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공모전에서는 제약을 어느 정도 좀 완화시켜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이상해 : 작년의 공모전은 하나의 단위 필지, 하나의 집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올해는 5개의 필지를 합친 것을 단위 대지로 제시함으로써 이 단위 대지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향후 서촌이 개별 필지 하나에 건물이 하나씩 들어가는 쪽으로 접근되는 것, 즉 달리 표현하자면 '파편의 미학'에만 관심을 두고 집을 설계할 수도 있겠는데, 그게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김승회 선생의 기본적인 주장이다. 그래서 다섯 필지를 합친 단위 대지에 집이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를 요구하면 서촌이라는 보다 큰 지역이 나중에 어떤 그림으로 나타날 것인가, 하는 것까지도 참가자들이 제시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다.

김광현 : 그 이야기는 이것이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라는 건데, 그렇다면 조금 더 일반해를 가져야 되지 않을까?

이상해 : 사실 처음에는 조건이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세 단위 대지를 대상으로 해서 한번 해 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김광현 선생의 말씀과 연관된 이유에서다. 그런데 그렇게 할 경우, 응모자들한테 너무 어려운 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송인호 : 김광현 선생의 말씀은, 응모자들이 거시적 시각이나 담론에 함몰되어 대지에서의 구체적인 제안들이 모호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경계로 받아들여진다. 시야는 부감하여 보되 실제로 골목과 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천착해야 한다는 것에 마땅히 동의한다. 그러나 건축에서 일반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모든 땅은 각각의 형상과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일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일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야 나의 정주가 성립된다. 물론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유형과 작법이 일반화될 지라도, 적어도 정주라고 하는 것은 나와 땅의 관계이기 때문에 설계의 일반해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공모전들이 역시 이런 담론-역사적인 지층이든 장소의 의미이든-으로 시작하는데, 아름지기 공모전은 조금 더 고집스럽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솔직히 1회 공모전은 개인적으로 조금 실망스러웠다. 호응도 높았고 좋은 작품도 있었지만, 굳이 아름지기의 공모전이라는 차별성이 없었다. 이에 정주라는 개념은 포괄적으로 해석하되 땅과의 관계, 나의 기억, 공간의 조직, 집의 구법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보다 경향성을 갖고 공모전이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김광현 : 그렇다고 내가 말한 일반해가 표준 주택과 같은 의미의 일반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늘의 삶이 ‘땅과 나의 관계’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난해한 문제가 많기에 던진 말이다. 내가 일반해라고 말한 것은, 지금은 정주하기 하기 위해 만든 집이라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팔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의미의 일반해라고 표현하였다. ‘땅과 나의 관계’만으로 주거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편 몽골의 주거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가지 이에 빗대어 말하고 싶다. 목초지에 얽힌 삶이 몽골의 게르를 만든 것이지, 게르가 목초지의 삶을 만든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삶이 유목이나 정주 같은 다양한 주거 형식을 규정하는 것이지, 정주를 위한 주택이 도시의 삶을 회복하거나 규정해 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최춘웅 : 대상지의 건물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 사람들이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할까?

이상해 : 여기에서 살 사람들을 위한 정주란 것, 그것도 중요하겠다.

김승회 : 여러 필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화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도 있고, 그것을 엮어서 할 수도 있겠다. 서촌은 지구단위계획에서 아파트를 짓게 되어 있는데 높이가 10층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또 여기 사는 사람들은 내구연한이 지난 이 집들을 리노베이션이든 신축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새롭게 진화시키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있다. 아무튼 그것과 관련한 것은 마지막에 논의해 보자.

이번 주제는 필지의 문제를 응모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필지를 그대로 유지하느냐, 골목의 형식 같은 패브릭은 유지하되 필지를 통합해서 새로운 주거 형식을 만드느냐, 또 한옥이 사이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한옥과 어떻게 연관을 맺느냐, 이런저런 고민들을 하는 것에 그 취지가 있다.

이번 공모전의 목표는 두 가지인 것 같다. 작품 발표를 통해 발언하는 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응모자들에게 공모전을 통해 무엇을 고민하게 할 것인가, 이다. 그랬을 때 이 시대의 정주는 무엇인가, 서촌이라는 지역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속에서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는 또 어떻게 생겨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최 선생의 말씀대로 현재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유지하면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것 또한 주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송인호:심사의 기준이 선명하면 좋겠다. 건축가가 이 대지에 실제로 설계하는 경우라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현실적 대안이 가능하겠지만, 건축주가 없는 대지에 대해 설계하는 공모전은 문제풀기이다. 공모전은 출제자가 문제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출제자는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 그리고 기대의 범주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 필지의 금은 밟지 마라, 그러나 현행 법규의 문제는 창의적으로 제안해라, 라고 요구할 수 있다. 또 필지가 작은 게 부정적인 전제조건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규모까지는 필지의 합필이 필요하다. 필지를 합필한다면 길에 면해서 길게 합필하기 보다는, 안쪽으로 깊게 합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이 태도와 원칙이 분명했으면 한다. 다시 말하거나와 아름지기 공모전은 조금 더 경향성을 띠었으면 한다. 역사 도시의 골격과 흔적을 존중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를 바라고, 한옥이라는 건축을 말 그대로 귀하게 생각하면서 창의적인 제안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옥 사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고, 한옥으로부터의 유추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원칙의 명시가 필요하다.

이상해:서촌 지역에 적정한 건축 볼륨을 제안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겠다. 그럴 경우에 세 번째 이야기인 필지(단위 대지) 문제와 연관이 된다. 도시의 전체적인 이미지 혹은 주변 환경의 이미지를 깨지 않으려면 단위 대지 하나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바람직할 것인가, 라는 것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응모자가 제안하게 하는 건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자.

김광현 : 필지의 금은 밟지 마라, 그러나 두 개 정도는 합필할 수 있겠다, 그것은 결국 볼륨을 키우지 말라는 것과 같다. 필지를 다 합하는데 볼륨을 높이지는 말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현행 법규가 허락하는 용적률 다 지키지 말고 여기다가 2, 3층 정도로만 넓게 깔고 중간 중간에 길도 만들어 준다, 그러면 좋은 작품이 되는 것 아닌가? 따라서 한옥과 한옥 사이의 문제는 필지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송인호:나는 그게 좋은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심사위원의 결정이다.

김광현 : 누군가 개발하여 7, 8층 짓는 게 끔찍스러우면 낮추면 되는 것이다. 필지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키려면 정확하게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관한 이야기다. 창의적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정확하다. 준비해야 할 것은 응모자에게 넘기는 식이 될 우려가 있다. 창의적으로 할 것을 요구했을 때 나중에 무슨 잣대로 볼 것인가?

이상해 : 그래서 자의적으로 하는 것보다 일종의 지침이 필요할 것 같다.

김승회 : 대상 필지에 한옥을 몇 개 끼워 넣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것은 참가자들이 어떻게 필지를 유지할 건가, 필지를 어떻게 합할 건가, 거기서 한옥이랑 어떻게 연결시킬 건가, 골목들은 어떻게 관계 를 맺는가 등등이다. 그것은 일종의 호기심이다. 그 속에 참가자들의 가치가 들어갈 것이고, 그것이 제출되면 우리는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공모전을 통해 생각들을 나누고 그 속에서 공명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틀을 만들어 놓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지나치게 제한되기 때문에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사실 지금은 많은 고민을 시키고 싶다.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필지를 자를 것인지, 합할 것인지, 그런 고민도 할 것이고, 그 속에서 여러 가치들의 충돌을 경험할 것이고, 그것이 또 결과로 나왔을 때 우리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상해:지금 현재 서촌에서 이루어진 지구단위계획과는 무관하게 북촌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송인호 교수께 묻고 싶다.

송인호:북촌의 경우보다는 경복궁 서측 지역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건축가들의 지혜를 모아서 만든 안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계획이니 그것을 존중했으면 한다.그 계획안에 이 지역에 대한 구상과 최대 필지 규모와 같은 지침이 있는데, 이를 토대로 심사위원이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합필하는 경우에도 기존 도시 조직의 스케일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합필하고, 땅에 새겨졌던 금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아이디어면 좋겠다.

7.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이상해:주요 단어에 대한 것은 언급을 해 줘야 할 것이다. 참가자가 어느 쪽으로 접근을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면 다음 주제로 넘어 가겠다. 참가자들한테 과연 어떤 것을 기대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최춘웅 : 북촌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구경꾼들만 있지 사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촌이 지키고 싶은 동네라면 정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인지 궁금하다. 또 환경적으로 아름답게 만든다는 게 결국 누구를 위한 건지도 궁금해진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마을이 꾸며질지 보다는 여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가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인 부분이 제약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송인호 : 10년 동안 북촌에서 진행된 사업의 성과는 한옥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고, 한옥이 이 시대에도 경쟁력 있는 건축 형식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껍데기만 한옥 아닌가, 상업용 한옥만 조장하고 있다, 살림집이 아니라 잠깐 머물다 가는 별장한옥 아닌가, 등의 지적은 서촌이 북촌처럼 되어서는 안 되는 세 가지 이유일 것이다. 첫째 지적은 구법과 외관의 진정성에 관한 내용으로, 건축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고 지혜로운 건축 지침을 마련하면서 풀어갈 문제이다. 둘째와 셋째는 지역 공동체의 문제인데 결국에는 지가의 문제이다. 도시 주거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공공의 배려와 함께, 건축가가 적정한 한옥 유형을 개발함으로써 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모전의 대지도 아마 비싼 땅일 것이다. 응모자들이 그 문제까지 해결하기를 기대하는지 모르겠으나, 사업 타당성과 전체 용적, 필지 개발 규모와 건물 종류, 프로그램과 정주 방식 등 현실적으로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주민 구성이 바뀌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상황까지 고려하다 보면 그 결과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자칫 현실적인 태도가 공모전의 목적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김승회 : 이 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서촌 마을의 길 중에서 넓은 길이고, 그러면서도 프라이빗한 스케일의 골목과 같이 엮어져 있어서 단면을 끊으면 아주 넓은 길에서 은밀한 곳까지 겪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그 앞의 높은 건물과 비교될 수도 있는데, 부정적으로 개발되는 방식 앞에 대안적인 것들이 강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주의 형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 속에서의 삶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개발의 형식을 제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히 있는 것 같다. 지가가 점점 비싸지고, 이곳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변화되길 원하는데 바꾸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그 시점을 기다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화의 형식을 제안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고, 거꾸로 지구단위계획에서는 필지를 묶어 아파트가 계획되어 있지만, 우리가 새로운 제안을 이 안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테면 이곳에는 3층 이상은 아니더라, 3층 이하로 가자, 또 여기서는 필지를 합하면 안 되겠다, 등의 이야기들이 응모자들의 제안을 통해서 거꾸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서촌의 진화 형식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상해 : 지금 말씀은 결국 응모자들에게 기대하는 것과 관련되는 건데, 그러면 향후 서촌 지역의 진화를 전제로 해서 제안하는 공모안과, 건축 자체의 해결이 좋은 안, 어느 쪽에 더 심사의 무게를 둘 것인지도 중요할 것이다.

김승회 : 실제로 땅이 좁기 때문에 그것이 서로 구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8. 한옥과 한옥 사이


이상해 : 이야기를 정리하고 매듭짓는 차원에서 ‘한옥과 한옥 사이’라는 제목을 짚고 넘어가겠다. 이것은 단위 대지 내에서 그 대지 안에 있는 필지들 간의 관계가 될 수도 있고, 대상 대지와 주변, 특히 주변의 가로망 형식이라든지, 서촌이 가지고 있는 어번 패브릭(Urban fabric)과의 관계도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 말씀씩 해 주고, 정리를 할까 한다.

김광현 : 앞서 언급한 일반해는 다른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는 해를 구해 주는 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 말한 것이다. 장소는 건축가가 잘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축물=건축가는 아니다. 특히 도시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고, 때가 묻으면 대체로 익숙한 도시가 되어 간다. 장소는 물리적인 위치나 크기 등을 정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흔적과 예상치 못한 풍경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다시 말해 장소는 시간이 지나가면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되고, 기억을 남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 사람들이 기억을 만들어 가는 쪽으로 진행을 해도 무난하지 않을까, 한다. 오해가 없는 의미의 일반해라고 한다면 그것을 만들어 가라고 제안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한편 내가 말한 부분은 어디까지나 밀도의 문제이므로 밀도를 어떻게 낮추느냐,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얼마를 떼느냐, 일 텐데 그것은 일단 근접하여 붙어 주기만 해도 일단은 성공일 것 같다. 그 다음에 그것을 합필해서 큰 덩어리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 못한다고 규제만 가능하다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겠는가? 지금 현행 법규는 개발과 성장을 위한 법규이다. 오로지 집 한 채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군(group)과 도시를 위한 규정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법규에 관한 간단한 논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출제자가 법규를 만들어 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한옥의 정신’ 같은 큰 얘기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짓더라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또 다른 형식으로 남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사는 집이고, 그들이 만들어 가는 집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사용자 스스로가 만들어 간다고 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군집을 이루어 내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한 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 전체로까지 연관되는 것이니까, 그런 군집의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송인호 : 나는 이번 공모전 지침에 단면에 주목할 것이라는 조건을 명시했으면 한다. 미세한 지형과 레벨 변화가 기록된 단면, 공간 조직과 건축 구법이 드러나는 단면을 통해 설계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거니와 청전 한옥으로 가는 골목과 청전 한옥 가운데 있는 안마당은 짝을 이룬다. 공간의 윤곽도 다르고, 하늘의 높이도 다르다. 참가자들이 채워진 부분, 즉 건물의 단면은 물론, 도시 안에서 비워진 부분들의 단면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며 창의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한다.

최춘웅 :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지금 현재의 상황은 유지될 것 같다. 현실적으로 터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복원, 보존, 끼워 넣기라는 세 가지를 결정하는 것은 건축하는 사람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마음껏 살 수 있는 무대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를 제안하면 될 것 같다.

김광현 :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이 말은 심사위원의 취지에 어긋나고 공모전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은 해 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우선, ‘현재 살고 있는 도시의 삶’을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정주를 위한 집보다는 오늘날의 정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더 먼저라는 것이다. 다음 과제가 주어질 때는 현실의 문제가 더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오늘 대화에서 빠진 것이 있는 것 같다. ‘한옥과 한옥 사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군을 이루는 문제이다. 한옥은 군을 이루어 잘 어울렸을 때 가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을 이루고 있는 개별 한옥들의 질적인 편차는 묵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옥이 가지고 있는 형태는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옥이 군을 이뤘을 때 가질 수 있는 재료나 형태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한옥의 영향권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한옥과 한옥 사이’에 대한 구법이나 재료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군을 이뤘을 때의 한옥에 대한 이야기는 빠진 게 아닌가 싶다.

김승회 : 공모전을 처음 시작할 때, 이 시대의 정주라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성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의 정주는, 장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삶의 형식을 생각해 보는 관점에서 정주라는 정의가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는 열려 있다. 열려 있는 정주의 정의는 참가자들이 내렸으면 좋겠고, 정주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안 된 상태에서는 진정한 해답을 구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 기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기억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김광현 선생의 말씀이 와 닿았다. 또 송인호 선생의 말씀 중에 필지의 흔적이라든가, 집과 집이 이어지고 도시로 이어지면서 형성되는 단면, 그것이 생성하는 빈 곳들, 마당과 골목이 만드는 것들, 그런 것들이 탐구의 중요한 주제가 될 것 같다. 진정한 정주가 무엇인지, 이 속에서 사는 사람의 삶이라는 게 과연 물리적 형식에서만 가능한 것인지, 삶의 방식을 통해서 새롭게 고민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라고 지적했던 최춘웅 선생의 말씀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들을 모두 상기하면서 최종적인 지침을 다시 정리하겠다.

정리/정귀원(와이드 편집장)

*이날 좌담회의 내용은 '설계의 관점’으로 정리되어 공모전 개요에 반영되었다.
“이날 좌담회는 격월간 건축 리포트 <와이드>에서 동행 취재했으며 2010년 11-12월호(no.18)에 개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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