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P6 좌담회

HTP1 좌담회

왜 지금의 시점에서 한옥에 대해 다시 논의하고 그 대상지로서 서촌에 주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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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상해(성균관대학교), 조병수(조병수건축사무소), 권문성(성균관대학교),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안창모(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1. 주제의 취지

배지운: 서로 다 아시지만 그래도 소개를 먼저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성균관대 이상해 교수님이시고요. 이번 아름지기 공모전에 운영위원장 맡고 계십니다. 조병수 소장님, 올해 아름지기 공모전 심사위원장이십니다. 옆자리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봉렬 교수님 와주셨고요. 경기대 건축대학원에 안창모 교수님, 성균관대 권문성 교수님 오실 예정이시고요. 아름지기 스텝, KBS 촬영팀도 함께 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지운: 아름지기가 오랜 고민 끝에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학생 공모전 형식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고민은 3년 전에 저희가 북촌 일대의 한옥을 답사하면서 변형된, 많이 진화되었다고 하는 한옥들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한옥이 어디로 흘러가야 할까라는 고민을 가지게 되었고요. 오히려 이 분들이 실제 우리의 한옥의 원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접할 기회가 적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에는 이상해 교수님 모시고 지방에 있는 좋은 한옥들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에서건 지방에서건 한옥을 소유하고 싶고 누리고 싶어 하는 수요가 늘어가는 데 비해 한옥을 생산해내는 분들은 제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대학 교육에서도 한옥을 전문적으로 집중해서 교육하는 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아름지기에서 관심을 환기시키고 그런 고민들을 공유하고자하는 바램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큰 주제는 한옥의 원형을 연구하고 변형을 모색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첫 번째 대상지로 서촌에 있는 이상의 집터를 주목하게 된 계기도 북촌에서 10년간에 걸친 새로운 한옥에 대한 모색이, 실험이 있어왔다고 생각이 들고요. 지금 작년부터 체부동, 옥인동을 중심으로 해서 한옥을 보존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계획이 일어나고 있고, 북촌과는 또 다른 형태의 한옥에 대한 모색, 실험들이 진행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장에서 저희들의 이 고민들을 특징으로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공모전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여기까지가 아름지기가 생각하는 개요이고요. 오늘 이 좌담회의 좌장은 저희가 운영위원장이신 이상해 교수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큰 질문들은 이상해 교수님께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이상해: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번 한옥공모전을 제가 이해한 것만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아름지기의 활동 목표, 혹은 설립 목적과도 굉장히 크게 연계된 걸로.. 아시다시피 아름지기가 ‘우리문화를 잘 지키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잘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가지고 중요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름지기의 활동 목표이거든요. 그래서 문화재로서 한옥을 그냥 잘 보존하는 차원에서 벗어나서’ 우리 한국인의 집들이 앞으로 정말 어떤 방향으로 지어질 때 보람찰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공모전이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다르게 이야기 하면 한옥에 대한 관심이 특히 건축과 학생들의 교육에 실질적으로 연결이 되고 학생들이 집을 짓는 데 어떻게 한옥도 같이 생각해야 하는가.. 이것이 좀 더 발전되어서 조금 전 배지운 실장이 이야기 했듯이 정말로 한옥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생활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새 시대의 한옥, 이것이 좌담회의 기본적인 생각이고 결국 공모전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설계안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 알고계신 부분이지만 이상의 집터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시죠.

배지운: 저희 대상지인 통인동 154-10번지는요, 이상이 1930년대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집터이고, 최근에 등록문화재 등록이 되었다가 취소가 된 이력이 있는 땅입니다. 저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 당시에 이상이 백부집으로 입양이 되어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30년대 초반에 그 집을 팔고 그 이후로는 지번이 나뉘면서 소유권이 분리가 되고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집도 새로 지어지고, 지금의 집은 이상이 살았던 집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등록 문화재 취소가 된 것으로 알고 있고요. 김수근 문화재단에서 최근까지 터에 대한 기억이라도 보존해야한다는 이유로 한옥이 남아있는 154-10번지를 매입하여 소유하고 있다가 최근에는 문화유산국민신탁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일단, 대상으로 한 땅은 이상의 집터였던 154번 전체가 아니라 그 중에서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그 10번지 일대의 땅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상해: 안 교수님이 이상의 집 중심으로 해서 예비지식을 갖도록 부가적으로 말씀 좀 해주십시오. 이상 자체도 좋고, 이 주변 터도 좋고. 그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좋죠.

안창모: 잘 아시겠지만 이제는 이상이 건축과를 졸업한 사람이라는 것은 거의 상식처럼 된 것 같고요. 경성고교 재학시절에 굉장히 빼어난 성적을 받았던 학생입니다. 제가 우연한 기회로 10여 년 전에 이상의 성적표를 보게 되었는데, 그 때 보면 단연코 빼어나서 일등으로 졸업했습니다. 또한 당시 한국인 건축인 중에 굉장히 빼어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상 말고 신무성선생, 이천수선생을 꼽을 수 있죠.

안창모: 당시에 이상은 아시다시피 건축가로서 알려지기보다는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는데, 이상의 시 작품은 사실 건축가였기 때문에 밤을 새는 골목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옥상 정원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근대적인 건축 지식이 시 속에 녹아 들어있는 게 굉장히 많고요. 건축인들에게 속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예를 들어서 르 꼬르뷔지에의 5원칙을 이상이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그 내용들이 녹아들어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보면 거꾸로 건축가로서의 이상이 시를 통해서 당시의 건축을 읽은 것일 수도 있는데 지나치게 문학경향화한 이상을 언급해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실제로 이상의 작품에 건축계가 무심했습니다. 이상의 작업 중 하나가 일제 강점기에 나왔던 대표적인 건축 잡지인 ‘조선과 건축’의 표지에 게재된 바가 있습니다. 실제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이상이 쓴 시에 나타나는 도상학적인 모습을 구체시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김민수 선생의 논문이었습니다. 건축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표현하기 어려운 그러한 현대시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측면에서 이상을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또 하나는 사실은 이상이 하필이면 왜 서촌이었을까, 서촌이라는 동네에 대한 설명도 필요할 것 같아요. 서촌이 일제 강점기 1930년대에 가면 도시한옥이 굉장히 인기가 있는 주거지가 되는데, 다시 이야기하면은 식민지 자본주의가 상당한 정도로 형성되어있던 시기에 살았던 이상이라는 것을 생각해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카페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제 강점기를 나라를 빼앗겼다는 정치적인 현실에 치우쳐서 암울하다고만 이야기하다보면 이것으로 인해서 당대의 시대에 대한 건축에 대한 사회상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 상당히 오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주제도 한옥, 장소, 인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만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 함께 ’한옥과 시대, 장소와 시대, 인물과 시대‘ 이런 식으로 시대가 매 주제마다 녹아들어가 있어야 되지 않는가..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되면 더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저는 1930년대의 도시한옥을 이야기하셨을 때, 우리가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해: 이상이 상당히 디자인에 뛰어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조선과 건축’ 표지가 현상설계를 통해서 채택이 된 것이니까. 오늘 아름지기에서 지금 기획한 이상의 집터에서 한옥을 생각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옥을 모태로 한 이슈들 그리고 한옥의 복원과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왜 지금 이 시점에 한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 대상지로서 서촌에 주목하는가에 대해 중심적으로 보고요. 조금 전에 안 교수님 말씀하셨듯이 한옥, 시대, 장소 특히 서촌이라는 지역의 이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것을 던져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내일의 한옥이라고 했을 때, 이상이 주는 이미지가 대체적으로. 제가 메모해 놓은 중요한 이야기 거리가 5-6개정도 되는데, 기본이슈들을 모아서 ‘서울 도시 속에 서촌의 조직.’, ‘역사와 민족 간 이미지에 대한 이해.’ 그다음 본론에서 ‘프로그램에 포함될 사항으로 어떤 것들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시간이 가능하다면 내년도에 이 공모전은 어떤 쪽으로 나가면 좋을 것인가’. 아름지기 공모전이 정형화 될 것을 전제로 해서...그러면 첫 번째 이야기로 기본 이슈들.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안 교수님이 먼저 이야기 하실까요?

안창모: 시대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수업시간에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특히, 학생들을 상대로 한 공모전이기 때문에 북촌의 교훈을 건축가들이 새겨야 된다는 측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1930년대라는 것은 이상의 시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건축의 신화적 인물로 이야기하는 르 꼬르뷔지에 등을 비롯한 모든 거장들을 굉장히 잘 알고 있던 시대였고요. 그 당시 1930년대에 근대 건축을 공부한 건축가들이 근대적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나름대로 활동을 많이 했었는데 조금 속된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시의 근대적 지식으로 무장한 건축가들이 발톱에 때만큼도 알지 못했던 도시 한옥이 60년,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어떻게 우리시대의 고전으로 바뀔 수 있었는지. 이게 단순히 사람의 인식의 변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당시의 60, 70년 전에 근대 건축의 지식으로 무장한 건축가들이 놓쳤던 것은 무엇인데, 그 놓쳤던 무엇을 도시형 한옥을 지었던 집장사들은 그것을 찾았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고전이 될 수 있었는지를 조망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때 그 시기를 공부하면서 읽었던 자료 중에 한옥집장사를 했던 사람 중에 정세본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정세본이라 분이 당시 1929년에 <경성칼럼>이라는 책에다가 당시 경성의 주택·건축 사정을 글로 쓰는데, ‘문화주택이라는 것이 별것입니까. 정원 좀 갖고 바람 잘 통하고 햇빛 좀 들면 그게 바로 문화주택이지요.’라고 하면서 자기가 지어서 파는 한옥은 바로 이런 장점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이야기는 1920-30년대까지 당시 조선에서 건축의 화두는 ‘문화건축’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문화주택은 일식 주택도 아니었고, 양풍주택 즉, 서양식 삶을 사는 문화주택을 이야기했고, 그런 문화 주택은 예를 들어서 홍난파 같은 분, 지금도 홍파동에 홍난파 씨의 주택이 남아있는데, 그런 문화주택이 인텔리들이 생각했던 최고의 주택이었고, 당대 1930년대를 살았던 건축가들은 바로 그런 주택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당시의 식민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새롭게 성장하는 중산층들의 꿈을 건축가들이 만족시켜주지 못할 때, 근대적 지식과는 무관한, 하지만 우리의 한옥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당대의 도시주택에 대한 필요성을 잘 파악했던 사람이 어떻게 해서 한옥 속에 발현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정세본 씨의 말들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상해: 이렇게 볼 수 있겠네요. 안 교수님의 말씀을 요약해본다면, 1920-30년대에 건축에서 근대의 수용이라고 하는 것이 ‘문화주택’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엄격한 의미의 ‘문화주택’이라기보다는 문명화된 주택을 문화주택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사실은 문화주택은 기능적인 것만 강조된 서구식 편리함, 거기에 한국의 문화나 생활방식이 빠져있는..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문화주택이 아닌데 문화주택으로 이해했다고 볼 수 있는. 지금에 와서 우리의 생활 방식이나 문화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가 필요한 것이고, 말 그대로 한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교수님?

김봉렬: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한옥 붐이 부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70년 전에 현대방식에서 놓친 것들이 여기에 실현이 되느냐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 재발견되는 어떤 면에서 보면 건축가들이 전혀 관심을 쏟지 못해왔던 부분들이죠. 이것이 일반 시장에서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한옥이 가진 문제들도 있지만 그 정도의 경제성장을 하고 여유 있는 층들이 생기면서 한옥을 소유하고, 어떻게 보면 취미가 전문화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전문적 연구나 개발 속에서 예를 들어서 근대의 주택을 보급했던 이런 상황이 아니고, 오히려 사회·시장 이런 곳에서 벌써 시작을 하고 거기에 건축계에서는 뒤따라가는 것 같은... 저도 뭐 그런 경험이 있고, 다른 건축가들도 그렇다고 하지만 한옥을 건축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시장에 기생해 간다는 느낌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시장의 요구에 편승해가면서 슬쩍 붙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 같은. 이게 과연 정당하고 정상적인 전문가의 일이냐 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의 노력들이 현재 다시 재개되는 것이고 그동안 많이 실험해왔던 여러 새로운 주택들에 대한 한계나 이런 부분들이 다 드러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언가 새롭게 하우징 타입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서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한옥을 건축적인 차원에서 봐야 되겠다. 여태까지 상황은 그냥 취미라고 보여져요. 남들이 못 가진 것, 좀 더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면 명품주의의 마지막. 주상복합까지를 다 훑은 다음에 새로운 어떤, 신분을 드러내기 위한 마지막의 단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고. 여기에 취미를 가진 건축주, 취미를 가진 건설업자, 취미를 가진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모여서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저는 이것이 이제는 건축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한옥이 갖고 있는 잠재성, 가능성 이런 데에 주목을 해야지 이것이 우리 것이니까 아름답고 이런 감상적인 또, 취미적인 차원을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고요. 이런 의미에서 아름지기의 지금 공모전의 시도는 그런 데에 초점을 많이 맞췄으면 하는 생각이고, 한옥이라고 하는 하나의 타입, 또 다른 생명체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이 생명체가 나아갈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탐구하는 좋은 기회인 것 같은데, 자칫 잘못해서 아마추어의 수준에서 다뤄버리면, 일시적인 하나의 현상. 이런 우려도 됩니다. 지금 ‘한옥 붐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까지 갈 것이냐’하는 문제가 시장화 되고, 토착화되지 않으면 결국은 이 한옥을 소유할 수 있는 층도 뻔하고, 어떤 수준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80년, 90년대에 불었던 전원주택 바람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이 지금은 거의 다 사멸화 되는 상황인데 그런 쪽으로 갈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도 조금 많이 들어서 하여튼 이것이 빨리 건축 분야로 들어와서 건축의 한 장르로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야 하고. 또, 다른 장르와 엮일 수 있는 여러 가지 개방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해: 우리가 김 교수님 말씀을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건축가의 역할이 한옥에까지 확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에서 지금까지 건축가들이 한옥에 대해서 이해를 할 때 상당부분 피상적이었거나 혹은 실제현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지식의 수준에서 한옥에 대해 접근한 한계도 살펴봐야 할 것이고. 그런 측면에 있어서 건축이라는 것이 수요자라든가 실제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현재 어떤 면에서는 잘못 흘러갈 수도 있는 한옥에 대해서 건축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앞으로의 한옥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제안 등이 중요할 것 같아요.

안창모: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한옥이 70년 전에 한옥 르네상스, 근대 30년대 도시한옥의 붐이 우리나라 70년대 아파트 붐 못지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고요. 지금 현재 한옥·붐도 경제적 여유를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건축까지 개입을 하지 않았을 때, 한옥이 르네상스를 맞이했는데 우려 섞인 부분을 말씀해주셔서 그 부분을 제어해 가면 현명하게 될 것 같습니다만, 건축가가 진짜 개입해서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다분히 높지 않을까. 오히려 아름지기 같은, 건축가들이 아닌 사람들이 개입해서 한옥이 더욱 빛이 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활동을 보면서 건축가들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 지를 생각해보아야할 것 같아요.

이상해: 이것을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다면. 건축가들의 역할에 한정해서 이야기 한다면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건축 설계에 대한 상당한 비판이랄까 자성이 사실 필요하죠. 건축가들이 설계하는 대상이 사실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할 때에 본인 자신도 정확하게 잡지 못하는 허상을 가지고 건축설계의 대상으로 했던 경우가 사실 인정해야 할 부분이 많잖아요. 한옥을 끌어 들여옴으로 해서 실제를 중심으로 놓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시대를 중심으로 놓고 그 다음에 그것을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야기가 확대될 수 있으니까 이야기를 한데 모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봉렬: 조금 더 보충을 하자면, ‘70년대하고 지금은 상황이 굉장히 다르죠. 그 때의 한옥은 지금의 아파트 같은 수준의 것이고, 굉장히 보편적인 기술과 경제성을 가졌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죠. 지금은 특히 한옥이라고 하는 것이 물론 농촌에서 보급되는 저가의 보급형 한옥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한옥의 실체는 하이엔드 시장에서 벌어진 거예요. 실제로 경제성을 보면 최첨단의 주상복합 아파트보다 비싸요. 이것을 대중화시키기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것이 그래서 수량이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동차 딜러들이 새로운 자동차를 가져오면 우리나라에 3,000대는 무조건 판대요. 그런 마니아들이 있대요. 3,000명의 마니아들은 새 기종을 사고, 쓰다가 일 년 되면 또 다른 기종을 사고. 이 사이클에 맞춰서 계속 새로운 기종을 수입해 오는.. 이것이 자동차 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인데 주택도 잘못하면 이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이 일시적인 붐으로 끝나기 보다는 이런 기회, 어차피 사회적 현상으로 벌어진 것에 대해서 건축가들이 개입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사회적 붐을 전문적 차원에서 해석을 해야죠. 그런 의미로 말씀을 드린 겁니다.

이상해: 이제 우리가 지금 여러 가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한옥과 관련된 ‘서촌’을 끌어와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서울 경복궁을 중심으로 봤을 때 동쪽에 북촌이 있고, 서쪽에 서촌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북촌에 비해서 서촌은 사실상 한옥 지구 일 때는 손을 안보고 있었던 거죠. 근데 한옥 붐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북촌이 어떤 측면에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또 어떤 측면에서는 가지 말아야 할 방향 여러 가지를 우리가 이야기 할 수 있겠죠. 이런 관점에서 서촌은 북촌의 전철을 안 밟는 다른 측면에서의 새로운 한옥 가능성을 우리가 좀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이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말씀을 ‘서울도시 속의 서촌’ 중심으로 이야기를 좀 더 진행해봅시다.

권문성: 서촌 이야기 들어가기 전에 한옥에 대해서 논의의 전제들이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선생님 같은 경우는 아주 고급화된 하이엔드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일단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위해서 풀기는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약간 한옥 쇼비니즘을 전제로 끌고나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옥의 지고지순한 가치와 신성불가침의 대상으로서의 한옥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논의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 입장은 제가 갖고 있는 입장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1930년대 한옥에 대해서는 다양한 점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 당시로서는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는 산업적 주택산업의 결과물로써의 한옥이 존재했었고, 거기에 대해서 자기의 경제력에 어울리는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상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까지도 경제적인 선택이었고, 다른 선택에 대해서는 꿈꾸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그런 부분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뭐냐면 일상적인 1930년대에 서촌을 중심으로 하는 이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삶 중에서 주거형식이 한옥이었고 그런 것들이 용케 한 70년 이상 버텨오면서 우리가 낡고 오래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가치들에 눈을 뜨기 시작했을 뿐이지 그 대상을 특별한 것으로 보는 것이 과연 우리 시각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한옥이 중요하고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건축들이 중요하다고 하면은 그 사이에 생산되었던 수많은 우리 일상적인 삶과 관련된 도시의 모습들과 건축들은 그러면 가치가 없는 것이냐..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고요. 그렇다고 하면, 일상적인 삶의 주거부분에 대한 선택으로써의 결과물들을 우리가 일상의 모든 시간마다의 일상의 삶이 중요하다고 하면 그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응된 도시와 주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들이 1930년대 우리가 굉장히 의미를 갖고 있었던 중요한 분들이 거기서 거주하고 있었고, 그러한 흔적들의 향기를 우리가 아직도 맡을 수 있고, 현재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혹시 한옥이라고 하는 물리적인 대상으로만 치환되면서 우리가 놓치는 많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이엔드 한옥이라는 말씀도 나왔는데, 서촌 이야기를 잠깐 드리면, 일단 저희는 한옥을 그대로 두자고하는 입장이고, 그 입장이 서울시의 입장으로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물론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쪽에 있는 한옥들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대부분 20평 이내, 열 댓평 짜리도 있고 그런데 대략 1억 정도의 유상·무상의 지원을 통해서 그 한옥들을 지금 현재에 쓰임새가 있도록 또, 내구성이 보강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면 현재 그 자리의 그 한옥이 생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정도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일상적인 삶이 잘 적응할 수 있는 정도의 조치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마치 굉장한 대상인 것처럼 주목을 하면서 오히려 저는 우리 내부의 논의가 아니라 대외, 외국까지 확장이 되었다고 하면 우물 안에서 자기들끼리 만족해서 논의를 끌고 나가고 결과도 사실 그 다음으로 이어져나가는 것을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상해: 권 교수님의 말씀이 오늘 이야기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한옥이라고 하는 것을 이제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한옥을 시대에 따라서 정리하는 내용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물론 아름지기 공모전 자체로는 한옥에 대한 정의를 요강에서 제시하기보다 응모하는 학생들 나름으로 이해한 한옥의 의미를 제시하고 그것에 맞는 나름의 한옥을 설계했음을 보여주는.. 그렇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한옥에 대한 정의가 한 가지로는 물론 될 수가 없겠죠.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런 측면, 이런 관점에서 한옥은 이렇게 볼 수 있고, 저렇게 볼 수 있는 거다,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 선생님께서 한 번 그 관점에서 한옥을 짚어 주시겠습니까?

조병수: 우리가 ‘한옥은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온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항상 어디서나 누구나 똑같이 지나간 시간을 비판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그 우리 삶 속에 한옥이 없었던 것인지 본다면. 저는 한옥을 어디서 발견했냐면 미국에서 귀국해서 15년 만에 달동네에 갔더니 한옥이더라고요. 쉽게 말해서 한옥은 담장이 있고, 건물이 있고, 비어진 공간이 있어요. 그런데 달동네에만 그것이 있고 달동네가 아닌 곳에는 그런 구조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달동네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외에도 달동네에서 배울 게 굉장히 많은데, 지도를 가져다 놓고 보니까 다른 동네와 다르게 달동네 구조는 나뭇가지처럼 생겼더라고요. 위에서 보면. 동네 자체도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이 우연히 생긴 것인지. 한국 지형 때문에 그렇게 생겼을 수도 있죠. 그리드 구조거나 일본 같은 리니어한 구조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길의 구조는 큰 길과 작은 길로 위계가 있죠. 제가 한국에서 운전을 하다가 미국에 가서 하면 사고의 위험이 높아요. 그리드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누가 먼저가고 누가 천천히 가야 하는지가 정확히 써져 있거든요. 굉장히 민주적이라 길들이 다 똑같은 힘과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반면 한국의 길들은 운전하면 훨씬 안전해요. 내 길이 좀 더 상대방보다 크거나 그러니까 나무 구조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런 디테일 한 것보다도 우리가 모르는 속에 사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요소가 많이 녹아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 시도가 되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는데. 오히려 지금 우리가 한옥을 논의하는 것은 또 그만큼 시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동안 해왔던 것을 비판하기 보다는 이러해서 이러하게 되었다라고 이해정도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러한 노력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동네를 부수고 아파트를 지으면서는 한옥에 대한 원형이 많이 없어지게 되었죠. 그러면서 그런 것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잊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한옥을 그러면 다시 주목을 하고 논의를 하는 것들이 한 가지 이슈가 될 것 같고. 또 하나는 서촌에 대한 것이 또 한 가지가 될 것 같은데, 한옥에 있어서 지금 요구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친환경적인 이슈가 중요하게 부각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건강에 관한 것이라든지 물리적인 친환경이 굉장히 중요하게 부각이 되는 것 같은데, 저는 물리적 친환경 못지않게 아니면 더 중요하게 사회적 친환경이 더 중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방의 구조와 마당 구조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성 그런 곳에서 자랐을 때, 어린아이들이 더 사회성을 가지고 자랄 수 있는지 라든지.. 어떤 사회적인 이슈들은 물리적으로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해놓아도 사회성이 잘못 발달되어서 한 사람 나쁜 사람이 나와서 세상을 파괴하기 시작하면 저는 그것이 굉장히 큰 파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친환경성이 한옥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이 아니었나 싶고, 달동네에 가보면 그런 사회적 친환경적 건축이 존재했었는데, 재개발이 생기면서 서로들 옆집하고도 대립관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제가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친환경성을 놓고 본다면 한옥이 우리 전통 속의 주거 형태지만 외국이나 세계적으로 볼 때도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김봉렬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데, 정말 어떤 하나도 거꾸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한옥을 새로 짓고 고친다고 해도 그것은 새로울 뿐이지 뒤로 가는 것은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중앙청가지고도 문제가 많았는데, 허물고 새로 만드는 것 자체는 앞으로 나아갔다고 보거든요. 과거로 돌이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단지 우리의 현 시점을 앞으로 끌고 나가는. 그러니까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명확하게 봤어야 하는데, 뒤로 돌이킬 수 있다, 라고 판단을 한 것이 잘못됐던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요. 또 실제로 서촌에 있는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다고 고문님 말씀하시는데 그런 부분도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손에 만져지는 것이라든지,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원형을 이해하고 이것을 우리에게 맞게 변형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두 가지가 다 중요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것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어제 인사동에서부터 삼청동쪽으로 걸었던 기억이 있는데. 굉장히 성공적으로 종로구청에서 그 쪽을 잘 보존하고, 아주 잘 보존되어 가면서 아주 예쁜 가게들도 많이 생기기도 했는데. 상업적인 측면으로 이용이 많이 되고 그런 것들이 또 한편으로 저는 긍정적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아쉬움은 남죠. 인사동도 마찬가지고.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이 관광지화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것이 하나의 형식을 보고 만듦으로써 외국인들이 ‘아, 이것이 한옥.’ 우리들도 ‘아, 한옥.’ 그리고 그것으로 이해하고. 디즈니랜드에서 어떤 패턴을 하나의 패턴으로 이해하듯이,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죠. 한옥이라고 하는 것은 나무 하나나 재료 하나나 스케일만 하더라도 몸에 와 닿고 좋은, 아름다운 것들인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이 충분히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왜 한옥을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를 논의할 때에는 그것 이상의 한옥의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고 전혀 다르게 하더라도 연관을 시켜서 한다거나, 그래서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측면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해: 그러면 조병수 선생님 말씀은 한옥에 대한 여러 가지 이해나 생각해야 될 것을 서촌에 한정해서 구체적으로 서촌의 역사적 성격이나 혹은 현재의 골목이나 가로망 구조, 주변 양상까지 포함한 자연, 이런 관점에서 하나의 좋은 실례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보다 더 구체적인 것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한옥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이야기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아요.

김봉렬: 한옥에 대한 정리를 하고 넘어갔으면 하는데요. 한옥에 대한 정의는 아니고, 범주를 설정하면 정리가 좀 될 것 같아요. 한옥에는 5가지 범주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역사적 존재입니다. 문화재로서의 한옥이에요. 과거에 존재했던 가치의 여부와 상관없이 북촌이나 서촌에 있는 70년 이상 되는 한옥들을 이야기하는 거겠죠. 두 번째는 구조체나 어떤 재료로서의 물체적 형식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한식기와를 쓴다든지. 이건 아마 최근에 한옥 진흥법인가에서도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이죠. 전통적 구조에다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세 번째는 정서적 원형으로서의 한옥.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건축 공간. 친환경까지를 포함해서. 네 번째는 건축적이고 공간적 요소로서의 집합체를 이야기하는 한옥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다섯 번째는 한국에 있는 것은 다 한옥이다 뭐 이런 거죠. 이 땅과 이 시대의 거의 모든 의미 있는 건축들을 지칭할 때 쓰일 수 있는 말이죠. 아름지기 공모전에서는 첫 번째 두 번째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적어도 정서적이고 건축적인.

이상해: 열려있다고 봐야겠죠.

김봉렬: 이런 쪽의 이야기를 한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재료자체도 크게 문제가 안 되고, 주목할 것은 그렇다면 정서적 원형이나 건축적 집합체나 아니면 장소성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한옥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안창모: 기본적으로는 김봉렬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첫 번째 두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 네 번째까지 열려있다는 것은 솔직히 이 부분은 예를 들어 공모전의 주제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제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부여박물관 사건 이후에 한국성을 이야기할 때, 형태를 좇기 보다는 공간을 좇는 방향으로 굉장히 강하게 드라이브 되어 왔었거든요. 형태를 좇는 것은 굉장히 저급한 것이고,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간을 논하는 것은 굉장히 한국 건축의 특징을 굉장히 수준 높은 것으로 다룬 것 같은 인상이 굉장히 왜곡된 구조 속에서 존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네 번째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은 그 동안 굉장히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우리 의식 속에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형태를 쫓는 것은 굉장히 안 좋은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있는 부분을 조금은 의도적으로 encourage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공모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여러 가지 가치 중에서 좀 더 방향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거기에는 아름지기나 심사위원이나 운영위원 분들의 생각이 강하게 들어갈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를 동등하게 열어 놓기 보다는...

조병수: 오늘 주제는 공모전이 아니고 한옥의 원형에 대한 이야기와 이상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서촌이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인데.. 그 말씀이 굉장히 클리어 한 것 같고요. 생각을 한 번 떠올려 보는데, 아름답게 될 것 같은데 조금 뻔하게 될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기대 할 것인가 한다면, 글쎄요. 기대 할 수 있을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김봉렬: 형태는 건축 속에 다 들어가는 거죠.

이상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조병수 선생님과 함께 학생 공모전이 어떻게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대해 가능하면 학생들이 추상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도 물론 자기 생각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겠지만 실제적인 이해나 해결을 위한 노력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반영될 것 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 했는데요. 금년도에 예를 들어서 반영될 수 없으면 내년부터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서 건축 교육에도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권문성: 그 부분과 관련되어서 저는 이상의 집으로 제한된 것에 집중한다고 보면 현재 서촌 그 지역뿐만이 아니고 그리고 그 현재 모습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저희들이 준비한 게 있으니까 그것을 보고 그 상황에서 그 집 사이트에 어떤 형식과 내용에 대한 제안을 바꿀까 하는 그 속에서 고민을 하는 것인데, ‘형식이 어떻게 되는 것이 그 건물 하나로써 마을 전체 속의 하나의 요소로서 바람직할까를 고민해보시오’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지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죠.

조병수: 권 문성 선생님이 그쪽 지역 하시는 것은, 마스터플랜인가요 가이드라인인가요?

권문성: 정확하게 말하면 가이드라인에 가깝고요. 지구단위 계획이에요.

이상해: 그러니까 어떤 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지침이 아니겠어요. 뭐가 제일 중요해요?

권문성: 너무도 당연한 상식인데, 논의가 ‘한옥’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모든 작업을 보존해야한다는.

권문성: 그런데 내용을 보기 시작하니까 한옥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더라고요. 한옥이 존재하고 있는 그 마을 전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으로 쌓여있는 문화적인 적충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아직도 곳곳에 서려있는 이야기들. 그러면 마을의 전체 패브릭 속에서 존재하는, 시간 속에서도 지속적인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것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마을 전체의 우리가 과거의 모습을 가능한 유지하면서 진화가 되었으면 좋은 부분이고 그렇지 않을 수밖에 없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것. 그런 것들이 섞이면서 미래의 모습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지침입니다. 사실 굉장히 모호하지만, 결론은 ‘여기 요만큼은 한옥을 가지고 생각하시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신, 한옥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은 뭐냐면 골목 이라든지 그것들조차도 손대지 말고 했으면 좋겠다. 그것을 변형하는 것을 가능하면 막을 수 있는 지침을 주는 것이죠. 그리고 물길이 흘러가는데 그 백운동천이 흘러가는 여러 경로에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만들면 어떤 부담들이 있을 가에 대한 것까지 저희가 검토해서 ‘이렇게 만들 수 있다’라는 것까지 저희가 제안을 하는 거죠.

이상해: 지금 북촌이나 서촌에 1920년대에 말부터 형성된 한옥을 가지고 이야기 할 때, 굉장히 중요한 것을 하나 생각해 볼 것이 ‘도시형 한옥’ 소위 아주 작은 대지에 가능할 수 있던 주거형식의 하나 아니겠어요. 결국 집장사들과 수요자들의 요구에 의해서 그렇게 나온 거겠죠. 그러면 지금 이 시점에서의 도시형 한옥이 제안되었듯이 지금 꼭 그것만 지키자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21C가 시작하는 시점에 또 하나의 도시형 한옥, 시대를 수용하는 한옥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안하셨습니까.

권문성: 그 얘기는 안하고요, 저는 조선 말기에 한옥이 그 다음 단계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때 이후의 진화가 멈춰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완성된 질서로서의 한옥이 갖고 있는 지붕하고 기둥이 만들어내는 모듈. 그리고 그 안의 방과 마루와 외부 공간, 마당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서로 만들어내는 공간들의 조합을 통한 공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 사실 그럼 한옥의 형식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고 유형도 굉장히 많이 개발이 돼있어요. 그러면 한옥을 짓는다는 것은 주어진 필지나 프로그램에 대해서 그 상황에 주어진 형식을 어떤 식으로 앉혀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거죠, 한옥을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이냐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적용시킬까에 대한 고민이 한옥디자인이라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그 전에 있던 한옥이 갖고 있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요소를 만들어서 생각을 해 놓았다든지..

조병수: 그러면 그렇게 보전해야하는 한옥의 가치는 뭐죠?

권문성: 사실, 절대적으로 보전해야 된다는 것은 시간을 굉장히 오랫동안 버텨 왔다는 거거든요.

이상해: 외형에 대한 보전이겠죠?

권문성: 그렇죠, 70년 동안 살아남았는데 70년 동안에 담겨있는 것은 주거를 기본으로-다른 식구들이 산 것도 있지만-계속 조금씩 변형이 된 거잖아요. 그런데 그 현재형의 삶을 담을 수 있는 형식으로 하고 기본 형식은 유지가 된 거죠.

조병수: 그러니까 그 두 가지를 명확히 해야 될 것 같아요. 하나는 한옥의 옛것으로서의, 고건축으로서의 가치, 하나는 전통적 가치-전통은 바뀌는 거라고 본다면, 사전에도 보면 전통은 항상 바뀌고 새롭게 태어날 때 전통이다, 라고 정의를 한단 말이에요. 그렇다기보다도 전통적 가치에도 주목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 얘기죠.

이상해: 조 선생님 말씀을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꼭 기와집으로 해야 하느냐.” 쉽게 이야기해서 “2층은 될 수 없느냐, 3층은 될 수 없느냐.”

권문성: 지금 저희들이 정리한 부분은 기존의 70년 가까이 유지가 되었던 그 실체를 그러면 지울 이유도 없는 겁니다. 서울시에서는 만약 그것을 현재까지 유지됐던 모습과 형식을 포기 하고 헐고 다시 짓겠다고 그러면 서울시가 사겠다는 겁니다. 사고, 현재 형식은 유지하겠다. 돈 받고 다른데 가서 하고 싶은걸 알아서 해라. 대신 예전에 갖고 있던 것들을 유지하겠다. 이게 서울시의 원칙이고, 그리고 이제 그런 것들이 이 시점에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해: 그러면 예를 들어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한옥 지붕으로 된 집단 지역은 흔히 이야기하는 기와지붕으로 된 지역을 그대로 유지를 하고 내부에서는 평면 변화가 있을 수 있겠죠. 그러면 이상의 집터가 있는 지역은 기와지붕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한옥이랄까 이런 것들에 대한 가능성도 있습니까?

권문성: 한옥권장지역을 설정하여 새로운 한옥의 가능성은 열어두었습니다.

이상해: 굳이 한옥이 기와지붕이 아니더라도 가능할 수 있는 도시 주거형 모델 말입니다.

권문성: 저는 일단 한옥 집단으로 남아있는 부분은 현재형으로 바뀔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서 계속 살 수 있게 만들고,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전체 조직, 골목길, 물길, 이런 것들로 얘기되는 패브릭, 그 경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담장을 예전모습으로 사용한다던지, 인접한 곳에서는 고층화 되는 것들을 가능한 한 피하게 한다 던지 하면서 서촌지역을 걸어 다니면 전통 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옆에 신 한옥을 지었다. 뭐 이런 것들을 못하게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 한옥이라고 하는 것이 경제성에 직면해서 상당히 어렵습니다. 상업적인 이야기도 했지만, 한옥을 짓는 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한옥이 깔고 앉은 땅이 너무 비싸서입니다.

김봉렬: 밀도의 문제인거죠. 단층이나 2층밖에 건축할 수 없다면, 도시 주택으로서는 무척 비경제적인 밀도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그렇다고 5층 혹은 그 이상으로 용적률을 높이고 기와지붕을 씌운다면-중국의 현대건축가들이 1990년대까지 시도했던- 한옥의 진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율배반의 상황입니다. 이 점 때문에 전문가의 개입과 연구와 부단한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한옥의 실체를 잃지 않으면서 고밀도화하는 방법을 찾을 때, 한옥을 진정한 현재의 하우징 타입으로 정착시킬 수 있겠지요.

권문성: 그 땅의 환금성을 생각할 때 그 땅에 한옥이라고 하는 용적률을 작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을 지어서 상업적으로 성취, 이익을 얻는 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거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한옥을 다 바꿀 거다, 라고 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해: 2주일정도 전이었는데 건설회관에서 한옥에 대한 연구용역 성과물 심포지엄 발표가 있었는데, 거기서 제목자체가 신 한옥이었어요. 상당히 짚어볼 문젠데, 신한옥이라는 것이 시대의 한옥인데 이것을 신한옥이라고 이야기하고 기와지붕, 목조가 중심구조체가 되고 쉽게 이야기해서 있던 그대로의 한옥을 염두에 두고 기능이나 용도 등등 들이 이 시대에 맞는 것을 수용하는 것을 신 한옥, 이런 양식으로 정리하고 그 용어를 썼어요. 그래서 지금 권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신 한옥과 한옥을 구별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이것이 아직 우리끼리도 합의가 안 된 용어죠.

권문성: 지금 분명한 것은 한옥이 일단 조선조 말에 완성된 형식이라는 것은 인정을 하지만 우리 스스로 여러 가지 요소로 그 진화를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한옥의 부분 요소 위주로 이해하여 제대로 된 기본적인 한옥을 제대로 못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옥의 정수도 이어가지 못하고 진화의 방향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해: 안 교수님 한옥에 대해 정리해 보실 필요 없으십니까.

안창모: 저는 뭐 그런 쪽으로 이야기 한다면 우리가 왜 한옥이 전통적으로 단층일 수밖에 없었는가, 겹 구조를 가지지 못했는가, 그런 쪽에 관심이 좀 있는데요, 저는 근대 이후의 우리 전통 건축이 왜 해체되었고 어떻게 재구축됐는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전통의 한옥 공간구조가 근대의 산물인 물과 전기 등등이 들어오면서 공간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켰느냐. 물이 집안으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한옥의 공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 동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을 우물에서 길어 썼을 때의 동네의 커뮤니티 중심공간인 우물이 집안으로 바뀌기 때문에 더 이상 우물가에 갈 일이 없어지는 행위라든지, 물이 마당의 우물로 있을 때와 집안의 수도로 사용할 경우 안과 밖이 바뀌는 경우라든지 이 관계가 달라지면 내부 공간의 조직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옛날 우리 한옥에 다층구조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거잖아요. 불을 안고 있는 온돌의 구조에서 목구조가 그걸 해결할 수 없었으니까 단층 구조밖에 될 수 없었던 거잖아요. 그런데 만약 난방시스템이 바뀌었다거나 다른 등등의 이유로 불을 안고도 다층구조를 지을 수 있었다면 당연히 한옥이 그렇게 진화를 해왔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한옥은 단층이고 이렇게 우리가 형식 논리를 규정해 버리면 우리가 한옥의 진화를 막았던 문제가 근대이후에 극복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화를 못하게 막는다는 거죠.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그 부분에는 타율적 근대화로 인해서 우리가 스스로 근대화를 했어도 버렸을 것을 타율적 근대화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린 것니까, 라는 의식이 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스스로 근대화를 했더라도 한옥의 많은 부분을 버렸을 거고 상당부분을 바꿨을 텐데, 기본적으로 근대사회에 들어서 한옥의 변화에 장애가 되는 여러 요소가 있었을 텐데 우리전통 건축이 왜 해체 되었고, 공간도 있을 테고 구조도 있을 거예요. 근대 이후에 어떻게 재구축 되는가 그 동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으로 보고 그 부분을 열어 주는 것이 그것이 공간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형태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술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권문성: 기술 이야기 할 때 물을 이야기를 하셨지만 사실 우리 한옥은 흙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당시 그건 유일한 선택이었거든요. 다른 재료라는 게 있을 수가 없는 거였거든요. 근데 물과 관련한 기술을 이야기 한다고 하면 다른 것들도 똑같은 밀도로 집 안에 들어와 있는 거고, 그러면 다 치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예전에는 유일하고 값싼 재료였다면 지금은 선택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비싼 재료잖아요. 그것들이 물과 한옥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경제력과 주거형식이라는 문제로 바뀌게 되기 때문에 굉장히 문제를 쉽게 물이 들어왔다는 것 하나로만 얘기될 수 없는 거죠.

안창모: 제가 말씀 드리는 건 근대 여러 가지 것 중에서 변수를 다양화하면 생각이 정리 안 되기 때문에 예를 물로 설명 드린 거고 구조일 수도 있고 재료일 수도 있고 복합적일 수 있는 거거든요.

이상해: 그래서 그런 이원적인 것들이 수용될 수도 있고 혹은 경우에 따라서 극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런 사항들을 이번 설계에서 학생들이, 총체적으로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힘들겠죠. 나는 이번에 어떤 부분을 접근해서 해결해 봤다, 라는 부분이 중요할 것 같거든요. 지금 우리가 나눈 이런 대립적일 수 있는 부분들이 두 번째 장의 설계경기의 주제와 관련되어지는 데요. 있는 그대로 집을 가지고 생각할 것이냐 집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할 것이냐 같은 이야기지만 이게 리노베이션을 전제로 하느냐 건물 없는 상태를 전제로 하느냐 혹은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지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들에 대한 제시를 할 것인가. 목조건축의 한정해서 접근할 것인가 구조나 재료 모든 것들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자유로운 선택으로 할 것인가 등등과 연관되어있어요. 우리가 한정 짓는 것 보다 가능할 수 있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한번 짚어보면 어떻겠어요?

김봉렬: 두 가지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공모전을 했을 때, 첫째는 어느 공모전에나 중요한 요소죠. 이 땅에 적합한 그 땅에서부터 출발된 하나의 구체적인 안을 찾는, 특히나 면적도 상당히 작잖아요. 여기는 확장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거죠. 60m²에 도면도 1/10로 받아서 구체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죠.

이상해: 오히려 그걸 요구해서 고민하게 하는 게 중요한 거죠.

김봉렬: 그런 문제가 하나 있는 거고, 뭐 어떤 주제를 걸던 지간에 건축적인 완결을 봐야 되는 거니까 특히나 장소에 대한 부분, 장소는 역사를 다 포함하는 거겠죠. 특히 서촌이 갖는 역사성, 그 다음에는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가 갖는 목적도, 아름지기의 설립 목적도 그렇고 한옥이라고 하는 문제를 밑에 깔고 있는 거기 때문에 여기에 단답형으로 한옥을 무어라 생각한다는 이런 것. 이 두 가지가 초점일 것 같거든요. 한옥에 대한 것은 아마 학생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이해하기 쉽게 정의해야 하긴 할 텐데 꼭 기와집을 해야 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은 정해 주셔야지 헷갈리지 않을 것 같고 이걸 풀어 놓으면 한옥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 또 한옥에 대한 새로운 정의나 이런 걸로 풀어내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서촌은 조금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서촌과 다른 서울시의 다른 동네는 차이가 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북촌하고 비교해보면 시간의 축적 같은 게 잘 보인다는 거죠. 북촌이 ‘30년대 ’60년대 번성했던 시기의 상황에 고착되어있다고 치면 여긴 아주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변했다, 이 말은 곧 기존의 구조가 그렇게 튼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완결 되어있지 않고 느슨하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또 하나는 이 장소가 아마 조선 중기나 후기까지는 굉장히 귀족들의 장소였죠. 왕족들도 많이 살았고 그러다가 근대기로 들어오면서 아마 중산층? 지식 문화인들 상공인들의 장소였다가 해방이후로는 거의 서민층의 장소로 오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장소가 변한 게 아니라 여기 사는 사람들이 계속 떠나고 신 개발지를 찾아서 가고, 그러면서 이 장소는 다른 계층에 의해 점유가 되고, 이런 상황들인데 이게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냐는 겁니다. 그 문제는 서촌의 물리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주거지인 서촌이 어디로 가야하느냐 이건 아마 이상의 주택에서 이게 주택으로 가야하느냐 카페로 가야하느냐 전시로 가야하느냐 하는 용도의 문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그다음에 한옥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집장사 스타일이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집단 형으로 개발이 돼서 분양이 되는 스타일이 있고 집단이라고 하면 많게는 열 세대 적게는 서너 세대 공동 생산으로 해서 분양하는 케이스가 있고 서촌의 경우 들여다보면 개별 개발 같아요, 대부분이. 같은 형태의 집들이 많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쉽게 일어날 수 있지 않았나. 이런 것들도 보면 이상주택이 처해있는 그 땅도 충분히 변화가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그래서 원형 찾기나 이런 것 보다는 좀 더 이 땅의 미래를 보고 서촌의 미래를 생각을 하면서 기능이나 공간이나 이런 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병수: 권문성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상의 한옥이 거기에서 보존을 해야 되는 걸로 지금 지구단위 계획이 되고 있는 거죠.

이상해: 그 터도 포함이 되는 거죠?

권문성: 포함을 못시켰습니다. 지금 위치가 애매해서 주변에 최소한 3세대 이상이 연속된 경우만 저희가 확정을 지어놨기 때문에 거기는 의무조건은 아닌 거죠.

이상해: 오히려 그러니까 이 터에 대한 학생들의 제안이 주변지역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에 대한 것도 방향제시를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오히려 현재에서 많이 바뀔 수 있는 부분은 옥류동천이 바로 끼고 있는 곳이거든요 옥류동천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은 이제 그림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옥류동천이 다시 만들어 진다고 하면 시민들이 집중하게 되고 집객효과에 따른 상업시설의 압력 이런 것들 때문에 바뀔 수 있는 여건이 많죠.

이상해: 예를 들어서 옥류동천 복개도 고려한다는 뜻이 되나요?

권문성: 저희는 지금 계획이 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안창모: 지구단위 계획을 하면 하는 거죠? 아니 근데, 그게 오랫동안 정체가 될 수가 있어요. 관하에서 그 땅을 사고 필요한 조치를 하고. 그게 딱 걸리는 순간에 손을 못 대는 거거든요 그 근처에 있는 것들은.

안창모: 지구단위 계획을 하시니까 복개를 하면 다른 대안을, 지구단위 계획에서 다른 우회도로를 제안 하실 것 아니에요.

권문성: 그렇죠. 근데 도로 자체도 일단 일방통행으로 바꾸면서 큰 문제는 없어요.

조병수: 어쨌건 현상설계 경기에 핵심이 되고 있는 걸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상해 선생님이 또 의견을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제 의견은 들으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는 거에요. 허물고 다시 짓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미안한 마음이 들고 땅 자체가 상당히 혼돈스러운 상태를 담고 있는데 변화나 이런 것들이. 처음에는 정리가 안 되어 있어서 아쉽다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이 현상 설계에서 좋은 표본을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이상해: 건축법규에 내에서 하는 거죠? 저는 설계라는 게 구체적인 것이 주어지지 않으면 상당히 피상적인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스무 평 정도가 된다면 최소 30평 최대 60평 정도를 설계하게 하면 지하로 넣거나 위로 기존 주택을 살리면서 덧붙여 올리거나 하는 가능성을 좀 본다면 기존의 보존만하는 형식에서 또 허물고 없어지는 형식의 사이에서 부분적으로 잘려나갈 수도 있고 기둥을 보강해서 부분적으로 올릴 수도 있을 테고- 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법규를 다 지키게 하나요? 그럼 건폐율이 문제가 될 텐데,

김봉렬: 이건 좀 제외를 해주죠. 처마길이를 건축면적에서 제외하게 하고

안창모: 주차장 같은 거 봐주고.

김봉렬: 어쨌든 원칙적으로는 그걸 다듬어서 잘 쓴다, 그것만 가지고는 이 현상설계에는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서촌이나 북촌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거지만 우린 그것보다는 그걸 어떻게 변형해서 새로운 부분들과 어떻게 접목 될 수 있는지를 보고 싶거든요. 근데 이것 외에도 제가 상상하는 것 외에 다른 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모를까, 용적률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기존의 한옥에서 다듬어서 하자면 용적률이 모자라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거든요. 용적률이 모자라서 덧붙이고 건폐율이 모자라서 늘리고 이렇게 뭔가 덧붙이고 늘리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도 크기로 해주면 그걸 해결하는 방법들이 똑같은 한옥 방법으로 해서 늘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완전히 대비가 되게 덧붙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 허물고 새롭게- 누가 봐도 이런 정도라면 허물고 지을 만하다, 이런 안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이상해: 권 선생님, 여기 현행조례에 의하면 최대한의 건축행위가 어느 정도 됩니까?

권문성: 7층 이하구요, 한옥 보존지구로 안 들어갔을 때는 50, 200% 정도

김봉렬: 몇 종 주거지역이에요?

권문성: 2종 주거 지역입니다.

이상해 이랬을 경우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용도적인 측면에서- 이것도 우리가 제한한 건 아니죠.

김봉렬: 근데 서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용도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못하겠죠. 서울시 안에서 서촌이 어느 쪽으로 갈 것 같으냐, 어느 쪽으로 가야하느냐에 대한, 서촌지역에 대한 역사에 대한 걸 제시해 주는 게 중요할 것 같고요, 이쪽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뭘까, 두 가지라고 보여 집니다. 첫째, 권문성 선생님의 안이 좋았던 것은 이 땅을 어떻게 상업적으로 다르게 해보자는 게 아니라 주거지역으로써 해보려는 의도가 있었거든요. 소위 1종 주거지역 정도면 2, 3층 이정도면 한옥도 승산이 있는 거죠. 아파트나 이런 것들에 비교해서 경제성이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 다음에 주거지역이라는 것이 도시지역에서 공동화 되고 외곽으로 빠지고 아파트 단지로 바뀌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주거지역, 종의 다양성이랄까- 하는 이런 곳이 사람 사는 곳이다, 라는 것을 만드는 방법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구요. 물론 현재 서울 도시개발방식에서 보면 이상적인 희망에 불과하지만, 권 선생님은 이상을 실현가능하다고 봤지요.

조병수: 저는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이게 근본적으로 지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거는 또 어떤 이야기냐 하면 돈이 많이 안 들고 지속가능한, 자체적으로 자생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만한 것이 된다면 아름지기에서 다른 곳에 투자를 해서 자생적으로 많이 지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봉렬: 제 생각을 좀 말씀 드리면 이것을 주택으로 한정짓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지금 도시에서 제일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기념비적인 건축이 아니라 주거 타입의 개발인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이상적인 주거타입을 가져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해서 서촌이 저층주거단지 지역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조금 덧붙여서 조병수선생님이 부분적인 이런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그 이유는 이 한옥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면 이 땅뿐이 아니라 한옥이 논의가 두 가지로 되고 있어요. 첫째는 보급형 한옥이라고 해서 굉장히 싼 값에 대량 생산보급을 하겠다하는 보급형 한옥의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아주 전통적인, 국가 문화재급의 전통기술, 고급화된 전통기술, 이 두 가지가 다 있는데 이 둘 다 한계는 뚜렷하게 있거든요. 문화재 보수를 한다 던가 하면 전통기술이 필요한데, 보급형 한옥으로 가면 문제는 싸구려로 엉성하게 만들 바에야 뭐 하러 만드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는 거죠. 한옥이 갖는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스케일도 다 사라지고 장인적인 것들도 없어지고. 이런 문제들이 이게 진짜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래서 생각이 든 게 바로 하이브리드 기술이에요. 하이브리드 기술이 없으면 한옥이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경제적, 기술적 숙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재료도 그런데 서울시에 있는 것들이 전부 목조로 간다, 그러면 굉장히 큰일 나는 거거든요.

조병수: 지금 보급형 한옥들이 들어오면 뭔지 모르지만 재밌을 것 같은데요.

김봉렬: 재미는 있는데, 만들어 놓은걸 보시면 거의 민속주점보다도 못한, 재료만 기와를 쓰고 그건 오히려 한옥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게 만드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하이브리드한 것들을 자꾸 실험하면서 갈 필요가 있겠다. 그래야 밀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경제성 문제도 해결이 되고 그러면서 맛은 맛대로 가지고 이걸 통째로 다 한옥을 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무리한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이상해 : 그게 신한옥 인가요?

김봉렬: 아니 신한옥의 개념은 다르죠. 신한옥은 구조 전체를 통째로 만들고 내부의 설비를 바꾸고 공간구조를 다르게 하고-

안창모: 근데 지금 말씀하신 하이브리드는 재료나 물리적인 걸 말씀하시는 거죠?

이상해: 도입 가능한 방법은 다 강구를 해도 좋다. 뭐 이런 거죠.

안창모: 그게 서촌이 북촌을 따라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북촌이 가지고 있는 사대부 동네라는 장소성이 가지는 성공요인을 크다고 보는 거죠. 서촌에는 그렇게 투자를 안 할 거란 말이에요.

이상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거죠.

안창모: 그래서 그게 서촌에 지향하는 성공 모델이 있다면 그 가치를 만들어 주는 작업이 이 건물 하나로 주는 것 이상으로 가치를 드러내 주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는 거죠.

이상해: 매듭짓는 걸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들 한마디씩 하시죠.

안창모: 저는 우리가 80-90년대에 전통건축에 대한 붐이 사실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건축가들한테도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볼 때 바람이긴 한데, 우리가 90년대 까지 우리 학생들이 성지 순례하듯이 답사하는 고건축들을 보면서 우리가 농촌건축, 시골건축이라는 관점을 지우고 명품건축이라는 마음을 갖기 때문에 결국 자기가 활동하는 땅은 도시고 도시건축을 해야 하는데 농촌 건축과 명품건축을 구분 못하지 않았을까. 우리 건축가들이 명품건축을 보는 건 좋고 농촌건축을 보는 건 좋지만 그것을 내가 하는 땅으로 변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시건축이 한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에 학생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해: 결국 농경사회에서 우리 생활 근간이 향촌이었다고 보면 이제 생활공간은 도시로 옮겨 진거고 그 속에서의 주거문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건축가들의 중요한 숙제죠.

권문성: 저는 처음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은 대답일 수 있습니다만 한옥을 접시에 올려놓는 순간에 그 가치가 다양한 가치가 아니라 특정한 부분의 가치로 치환이 되는, 그래서 어쨌든 일상의 삶을 담았던 실체로 이해를 하면서 그것들을 시간과 땅에 대한 컨텍스트 속에서 이해하면서 그 이야기들이 전개되지 않고 마치 별스러운 건축물로써, 물체로서의 한옥으로 이어진다면 결국은 왜곡 될 수밖에 없는 거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속에서의 한옥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동등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는 거고 그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반 사람들도 취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직면될 수가 없으면 실제로도 취미로 끝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경제, 산업, 일상성 이런 부분이 한옥에서 논의가 되어야지 건강한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병수: 저도 거기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고요. 결국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면 우리가 한, 두개 케이스로 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자생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걸 프로그램적으로나 건축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있어서 시대성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지금 2000년대 들어와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친환경적인 이슈들은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 기존의 한옥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배우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본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것까지 생각을 해서 만든다면 좋은 방향 제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상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모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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