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P6 좌담회

HTP4 좌담회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

1. 좌담회를 열며
김봉렬 : 아름지기 재단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현대적으로 활성화 시키기 위해 조직된 시민단체이다. 이 단체는 비단 건축뿐만 아니라 의식주 전반을 대상으로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왔다. 그러다가 5년 전에 건축 공모전이 제안되었는데, 당시엔 단순하게 한옥의 변형 등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심사숙고 끝에 정한 공모전 이름은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로 요사이 심심찮게 듣는 ‘미래 문화유산’이란 말의 첫 개념이 아니었을까 한다.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2009년에 시작된 공모전이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1회부터 3회까지는 통상적인 학생공모전 형식이었고, 특히 3회(심사위원장 승효상)째는 인사동 서인사마당 전통문화복합시설에 요구되는 아이디어 설계 및 프로그램 제안으로 대상지를 실제 프로젝트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올해의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는 김종규 선생을 심사위원장으로 하여 이 시대의 집합 도시 한옥을 주제로 한국인의 주거 형태에 대한 아이디어 설계를 과제로 내놓았다. 대상지는 도시 한옥과 다세대 주택, 그리고 상가가 혼재해 있는 동소문동의 11필지이다. 원래는 도시 한옥이 들어차 있었던 곳이지만 다세대 주택이 잠식해 들어오고 북측대로 쪽으로는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다시 말해 전통적 도시 구조가 바뀌어 나가는 전형적인 사이트이다. 대상지를 선정하면서 한옥을 보존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거론이 됐다. 그러나 '보존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 오히려 한옥에 대한 해석, 새로운 도시 주거에 대한 해석 등을 여기서 좀 보겠다' 라는 의도가 있다.
오늘 이 자리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공모전 제목 ‘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 도시 한옥’이 가지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의 방향을 제시해 본다면, 우선 ‘한옥의 경계’란 말은 한옥과 다세대 주택 사이의 물리적 경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1960년대까지 형성된 도시 구조가 1980년대 들어와서 한번 바뀌고 그 후에 또 바뀌게 되는 시간적 경계의 의미도 있다. 한편으로는 주거의 기본 형식에 대한 경계를 의미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단독주택에서 집합주택으로, 혹은 4인 가족의 1세대 주택에서 1인 가구 주택으로 바뀌는 최근의 현상과 연관이 있다. ‘이 시대의 집합 도시 한옥’과 관련해서는 우선 ‘집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와 어쨌든 도시 주거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도시 서울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 등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좌담회는 ‘한옥’이라는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이 시대 살림집 정도의 포괄적인 의미, 또 도시와 관계되는 단독, 집합, 밀도 등등에 대한 의견들을 주고 받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아름지기가 좌담회를 마련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4회 공모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를 남겨주기를 바라서고, 두 번째는 도시와 주거, 시간과 경계 등이 논의되는 담론의 장을 기대해서이다. 
끝으로 젊은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으면 한다. 이번 공모전의 참가 자격에 학생들은 배제됐다. 건축 관련 학과 졸업생 이상으로 한정했고, 그만큼 상금도 크다. 그 이면에는 프로페셔날한 공모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젊은 건축가들에게 도전적인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또 실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실제 프로젝트를 대하는 듯한 전문가적 대안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2. 법규와 조건에서 자유롭다는 의미

민현식 : ‘대상지에 해당하는 모든 관련 법규는 무시’라는 조항이 있다. 물론 현행 법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이해가 되지만, 제안한 안의 ‘리얼리티’, 현실적인 또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작업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김종규 : 조건 이외의 것은 참가자들이 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정하게 된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도록 주문을 했다. 나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현행 법규 자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법규조차도 상식적으로 제시한다면 좀 더 생산적인 공모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아이디얼한 측면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민현식 : 응모한다고 가정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를 상상해보자. 우선, 여기에 ‘한옥’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한옥’은 아주 강렬한 ‘조건’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조건’에 대응하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김종규 : 사실  모든 게 다 의문(question)이다. 주제 자체도 그렇고, 기존 한옥의 보존 여부도 그렇다.

 

김준성 : 이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건가? 여기는 필지가 30평 단위로 다 쪼개져 있어서 현행 법규, 이를테면 일조권 같은 것을 적용하다 보면 지을 수 있는 게 없을 거다. 그렇지만 합필이 됐을 경우를 상상하게 만들면 법규 준수를 조건으로 내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김봉렬 : 그것에 대한 제한은 걸어 뒀다. 합필을 통해 유지하든, 단위 세대에서 유지하든 현재의 밀도와 용도는 유지하라는 조항이 있다.

 

민현식 : 이러한 사항들에 대하여 좀 더 명확한 얘기를 해 두는 게 좋겠다. 이를 테면 기본적 법규, 합필의 문제, 한옥의 존치 여부 등은 자유이며, 물론 그것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밝혀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아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중요한 전제들을 생각하는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3. 도시 한옥을 대하는 자세

박인석 : 고민할 거리로 짚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는 한옥 문제와 밀도 문제가 있고, 좀 더 일반적인 문제로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선 한옥 이야기를 하면, 대상지는 한 줄은 한옥이고 한 줄은 한옥 아닌 것이 경계를 이루며 섞여 있는 블록이다. 물론 주최측은 그것을 의식하고 선정한 듯한데, 이 대상지를 놓고 응모자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한옥을 일종의 보전 내지는 계승 필요성이 있는 유산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시 한옥을 문화재의 성격으로 보기보다는 진화 과정물로 간주하면서 진화가 완성된 모습을 제안하기 위한 참조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를 좀 더 설명하자면, 도시 한옥은 도시화 과정 중에 도시 토지에 대한 밀도 요구가 본격화되면서 자생적으로 생성된 최초의 고밀화된 건축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후 아파트의 등장으로 도시 한옥은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견지에 선다면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밀도 요구에 완전히 적응한 건축유형의 비전을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입장 중에서 응모자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주최측이 정리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설계 에너지를 한쪽으로 집중시켜 주려면 말이다. 물론 우리 모두가 당연히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지만 공모전 설계에서까지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송인호 : 대상지는 동소문동 재개발2구역에 속한 지역으로, 경기가 좋았더라면 이미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땅이다. 공모전 대상지로 이 대지를 선택한 이유는 지금의 이 상태를 현재의 지형으로 인식하고 거기에 건축가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보겠다는 뜻 아닐까? 한옥이 있는 상태든 다세대 건축이 있는 상태든 그것을 대지로 보고 거기에 건축가는 어떻게 개입을 할 것인가. 그런데 그 개입의 정도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10만큼 개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90만큼 개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인석 : 실제로 이 설계주제는 현실 법제도적인 컨텍스트와 물려있다. 2011년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소위 가로주택정비사업, 주거환경관리사업이라는 두 가지 새로운 사업수단이 들어왔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란 것은 기존의 도시조직을 유지하면서 블록 단위 내에서 정비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즉 도시계획 도로는 그대로 두고 블록 단위에서 필지 전체 혹은 일부 필지를 합필하여 정비사업을 할 수 있다. 대상지는 실제로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프로젝트화 될 가능성이 농후한 규모다. 실제 사업에서는 밀도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크겠지만 어쨌든 이런 사업이 가능한 법 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송인호 : 2013년 상반기에 성북구청의 의뢰로 성북구에 한옥이 몇 채 있는지 조사하였다. 성북구는 다른 구에 비하여 재개발예정구역이 많은 편인데, 성북구에 한옥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였다. 한옥의 정의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한식 지붕의 서까래를 식별할 수 있으면 한옥으로 간주하였다. 조사결과 삼선동•보문동•성북동을 중심으로, 비교적 외관이 양호한 한옥에서 변형된 한옥에 이르기까지 1,618채의 한옥이 남아있었다. 2008년 조사자료에 따르면, 서울 전체의 한옥은 14,000여 채, 도성 안의 한옥은 4,000여 채로 추산된다. 이에 견주어 성북구에 1,600여 채의 한옥이 남아있으니, 문화자산으로서의 잠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성북천을 따라 한옥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는데, 이번 공모전의 대상지 또한 그 한옥밀집지역 안에 입지하고 있다. 근래에 건축법시행령에 한옥의 정의가 추가되고 한옥 건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건축법 완화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옥보존과 조성을 위한 정책이 실행되고 있다. 성북구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최초로 구민들을 대상으로 한옥 아카데미 강좌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등, 한옥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봉렬 : 한옥은 기존 상태로 놔두고 나머지 다세대 주택으로 바뀐 부분만 대상지로 줄 것이냐, 아니면 전체를 줄 것이냐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한옥을 제외한 필지만으로 하기에는 너무 제약이 심하니까 전체를 묶어서 주되, 그랬을 때 한옥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부여하게 된 것이다. 

 

 


4. 해 보고 싶고 해 볼 수 있는 것의 구현

김종규 : 이게 공모전이고, 더구나 계속 의문을 가지고 진행하는 공모전이기 때문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게 되면 스스로의 사유에 오히려 신선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제출안으로 이곳에 실제로 집을 지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가 생각할 때 이것은 의미 있다, 없다 하는 가치를 너무 고민하지 말고서라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혹은 해 보고 싶고 해 볼 수 있는 것을 구상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 싶었다. 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상당히 많지 않나. 한옥의 보존 여부, 다세대 건축에 대한 비판적 시각 등등, 이런 것에 대한 과도한 고민 없이 진짜 이 블록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도시의 집합 주거 한옥을 생각해 보고 한옥의 정의도 나름 내려보고 또 현재의 상황들도 이해해 보면서 하고 싶은 바를 끄집어 낼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민현식 : 심사위원장은 김종규, 운영위원장은 김봉렬이다.(웃음) 두 분이 ‘한옥’에 대한 합의가 있는지 의심스럽고.... 김종규 선생을 생각하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와집 한옥’은 아닌 듯한데.

 

김준성 : 개인적으론 이 시대에 한옥을 놔두는 것만이 방법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약 실제로 이 공모전을 하게 된다면 아마도 가장 많은 시간을 이런 고민으로 보낼 것 같다. 밀도에 관한 문제와도 부딪힐 것 같은데, 현행법 적용이 조건이라면 최대로 하여 밀도를 산정할 수 있지만 그것도 자유롭게 하라고 하면 직감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인지….

 

민현식 : 최대밀도에 대한 과제는 아주 쉽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실은 너무 흔히 해 왔던 진부함이 있긴 하다.

 

김종규 : 사실 집합이란 단어를 쓴 이유가 있다. 집합이란 개념이 들어가려면 단독 필지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집합의 형태로 커뮤니티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 정도 밀도는 갖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현재의 세대수도 많은 수가 아니다. 11개 필지에 16세대이다.  집합을 만들면서 그 정도 세대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면 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5. 대상지를 경계 지역으로 고른 이유

송인호 : 합필의 규제가 밀도의 문제, 전체 볼륨의 제어로 귀결되긴 하지만, 사실은 길과 만나는 방식 혹은 블록 자체의 조직을 통제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나는 적어도 이것에 대한 입장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밀도를 최대한 찾는 것이 되거나, 땅이 가지는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되거나. 지역에 대한 문제를 요청한 사람의 기본적인 철학, 시선 그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이 장소에서 지켜지고 있었던, 남루하지만 진화되어 온듯한 스케일을 존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극대화된 땅의 가치를 결국 밀도로 계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밀도는 적절하게 낮추면서 다른 것으로 가치를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입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도시 차원의 스케일이나 기존의 것에 대한 주최측의 태도나 입장은 결국 왜 여기를 대상지로 삼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김봉렬 : 1980년대에 들어서 전통 주거지들이 다세대 주택으로 파괴되어 가는 상황을 보면서, 결국 주거지들은 변화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경계에 다세대 주택의 형식이 최선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변화의 현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면 같은 조건, 똑같은 밀도하에 다른 대안들은 무엇인가를 찾아보게 하고 싶었다. 대상지로 경계 지역을 고른 이유이다.

 

박인석 : 가만히 놔두면 남아있는 것들도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송인호 : 그러나 이 집과 저 집이 짝을 이뤄 한옥 게스트하우스나 새로운 도시건축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은 1937년에 돈암지구라는 이름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도성 밖에 새로 공급된 주거지이다. 조선주택영단에 의하여 40mx100 m정도의 블록이 조성된 후, 다시 4열 x 10열 정도로 분할되어 돼서 각 대지에 도시 한옥이 건설되었다. 보문동 도시 한옥 주거지의 경우 길에 면한 바깥쪽 도시 한옥들은 모두 다세대 주택으로 대체되었고, 안쪽 켜의 한옥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 한옥들은 짧은 골목을 통해 진입하는데, 어느덧 80여 년 진화해온 도시조직도 흥미롭거니와 다세대주택과 한옥이 연합하여 이루고 있는 도시 풍경이 꽤 그럴싸하다. 이번 대상지역 역시 집들의 관계를 잘 맺어주고, 집합의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거나, 결여된 기능이나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면 창의적인 도시건축으로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6. 집합과 관계

김봉렬 : 집합의 방식도 꼭 수직적이거나 연립적인 것 말고 입체적인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박인석 : 합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도시 그레인이 커지는 것을 간접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이 커졌을 때 우려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결국 골목이라는 공공 공간과 개체들이 직접 접속하는 방식이 깨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닐까. 아파트가 아주 전형적인 예인데 요즘은 다가구주택조차도 그렇다. 개개 집들의 삶의 모습들이 닫혀있고 소통되지 않는다. 만약 이런 문제가 없을 수 있다면 합필을 한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될까? 1, 2층 정도에 있는 집들에서 도시 한옥들이 골목길과 맺고 있던 그런 관계가 유지되기만 한다면 다소 고층이 된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규제를 하는 이유는 부정적인 현상이 나올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개발 행위 속에서 경제성만 고려한 부정적인 개발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일반 규제로 그것을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해본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실제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은 공공이 개발하는 퍼블릭 하우징(public housing)을 설계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공공이 이런 개발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도시조직 속에 게릴라식으로 점점이 퍼블릭 하우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도시 조직을 유지하면서 저소득 계층과 중산층이 함께 살아가는 동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상지를 공공이 개발한다고 가정하면, 개체들의 삶의 양식에 대한 제안과 함께 공공적 차원에서 이 동네가 필요로 하는 약간의 인프라(infra)까지를 포함하는 모델을 제시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합필을 걱정할 이유도 없고 경제성을 따지는 개발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보다 나은 도시를 위해서 유지해야 할 속성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공의 개입을 상정하고 퍼블릭 하우징을 생각해 보자든가, 동네에 기여할 수 있는 것, 개별적인 삶들이 계속 유지해야 할 퀄리티(quality) 등을 존중해 가면서 제안하라고 한다면 굳이 다른 콘트롤(control)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송인호 : 한 가지 덧붙인다면, 대상지 자체가 자기 완결적인 것으로 설계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대지에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면, 골목에 면한 다른 한옥들이 피해볼 가능성이 있다. 함께 동네를 이루고 있던 이웃집들과, 또는 그 집들이 이후에 새 건물로 변화하더라도 더불어서 길을 만들겠다는 자세를 갖기를 기대한다. 이 지역이 변화하는 주기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건축을 기대한다.

 

김봉렬 : 북쪽은 4,5층 되는 상가들이고 남쪽은 단층 한옥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사이에 또 끼어 있고 그 안에서 또 쪼개져 있는, 묘한 경계들이 만나는 장소이긴 하다.

 

송인호 : 이 대지 역시 앞서 언급했던 보문동의 도시 한옥 주거지와 비슷한 변화양상을 보여준다. 북쪽 필지들은 일렬로 다세대주택으로 개발되고, 남쪽 필지들은 한옥으로 남아 있다. 도시현실이 잘 드러나 있고, 그 긴장감이 아이디어의 출발점일 수 있다. 성북 도시 한옥 주거지에 대한 현실적이며 창의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7. 공공의 개입

민현식 : 주택공사나 서울시 등 공공기관이 개발을 주관한다면, 그것은 ‘사적 소유’가 아닌 체제로 집을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우리시대, 특히 한국에서 집합주거 즉 아파트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된 사유를 추적하면, 그것 중의 중요한 것이 사적 소유에 기인한다. 만일 공모전의 전제가 공공이 주관하며 사적 소유를 제한한다면, 상당히 많은 자유로운 생각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봉렬 : 사적 소유가 아닌 체제라 함은?

 

민현식 : 소유권은 공공이 가지고 있으며, 일정자격조건을 갖춘 시민들이 임대하는 집. 또한 개발이익 또한 공공이 가지게 되어, 그것이 다시 시민에게 되돌려지는 체제이다. 이는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체계를 벗어난다는 뜻이고….
또 다른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누가 사는 집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즉 여러 연령대의 그룹, 다양한 소득계층들이 섞여서 살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송인호 : 그저 공공적인 도시는 좀 건조한 느낌 아닌가? 좋은 도시는 각각의 개별 지분이 분명하되 그 사이를 공유공간으로 조율하면서, 개인의 욕망을 선한 방향으로 모아가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한편 공공이 개입하더라도 공과 사의 적절한 비율이 있을 것이다. 이 대상지는 개별적인 지분의 합만으로는, 좋은 도시 주거지를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대개는 개발업자가 개입하여 자본을 대고, 결국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도시를 개조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적절한 수위로 공공이 개입하여 그 간격을 채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본적으로는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아주 소박한 예를 들자면, 개인이 공용 공간을 내놓기는 어려우니까 공공이 다세대 주택 한 채를 사서 하다못해 관리실이나 샤워실, 공부방 등의 기능으로 공동의 삶을 엮어줄 수 있을 것이다. 노후화 되어가는 지역에 대하여 도시재생의 대안을 기대한다.

 

민현식 :  모든 집, 모든 개발이 공공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8. 자율적인 공공성

김종규 : 옛날에도 셋방과 주인집이 같이 살곤 했다. 공공과 사적 영역의 혼재, 다양한 세대, 다양한 삶의 공존은 사실 예전부터 있었던 거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도 그런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만 정도의 차이인 것 같다. 얼마만큼 그런 쪽을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김봉렬 : 도시에 공공성은 필요하지만 공유의 개념만으로 발전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우리는 전지전능한 소수가 계획하고 공급한 수많은 공유의 실패 사례들을 봐 왔다. 이 대상지의 조직은 공공이 한 것이지만, 단순히 택지만 쪼개 주었을 뿐 집은 개별적으로 알아서 지은 것이다. 다만 필지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비슷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 것인데, 나는 그게 바로 도시의 삶이 아닌가 한다. 공용 개발에만 의존해서는 뭐가 나올까 싶기도 하고…. 도시 한옥이 작긴 하지만, 방금 김종규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문간채는 1인, 2인 하숙 혹은 자취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 주인집과 셋집이 마당을 공유하는 형태로(눈치는 봐야 했겠지만) 공공성이 약간은 있었던 거다.

 

김종규 : 이 공모전에서는 집합이란 단어가 공공성을 대체하고 있다. 공공 기관에 의한 공공성이 아니라 자율적인 공공성, 또 이러한 방식의 집합 주거의 가능성 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박인석 : 쓸어버리거나 획일적인 방식만을 보여왔던 공공의 개입이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소필지 조직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에 보통 공공이 하는 일은 공원이나 도서관을 만들어 주는 건데, 더 중요한 것은 공공 임대 주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성주거지 정비 프로젝트의 딜레마는 정비를 통해 주거지 환경이 좋아지면 당연히 임대료가 올라갈 텐데 그러면 지금 살고 있던 돈 없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사는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사적 영역에서는 풀 수 없는 딜레마다. 그래서 이런 소규모 프로젝트 중 몇 개는 공공 임대 주택으로 만들어서 해소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공모전은 이것저것 전제를 달지 않고 사적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모델을 한번 제시해 보는 것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개별 필지에서 일어나는 행위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합필을 하는 경우에는 다르다. 합필로 인한 에너지가 발생할 텐데 그런 에너지를 몽땅 사적인 것으로 전유하는 게 우려되기 때문에 문제로 삼는 것 아니겠는가. 사적 전유만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한데 그것을 제안해 달라는 거다. 합필을 모두 해도 좋고, 부분적으로 서너 개로 나눠서 해도 좋고, 한두 개는 놔두고 나머지만 합필해도 좋으니 그것으로 생기는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어디에다가 배분할 것인가, 그것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봉렬 : 다세대 주택은 계단실 빼고는 공적 영역이 전혀 없기 때문에 비판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9. 누구를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민현식 : 진해에서 1년 여 지냈던 적이 있다. 진해에는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하숙집’이 없고 단순히 방만 빌려주는 집만 있을 따름이어서, 식사는 밥집에서, 샤워 등은 인근 목욕탕에서 한다. 차량이 출근 시 밥집으로 데리러 오고 퇴근 시 밥집에 데려다 주었고, 목욕비는 월급날 약속한 금액을 지불했다. 궁색한 샤워실보다 훨씬 나았고, 목욕탕은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다. 이미 그곳은 ‘방의 도시’였다. 주거생활에 필요한 기능들이 대부분 도시가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요즈음 다가구, 다세대 주택, 원룸 등을 만들면서 모든 기능들을 갖추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수월한 해결방법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것이 현대적 노마드(nomade)들의 가장 자연스런 ‘공동체’를 만들고 있었다. 따라서 대상지에 사는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설정하는가에 따라 ‘특별한 주거’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인석 : 재미있는 말씀이다. 요즘 관심을 모으는 쉐어 하우징(share housing) 개념은 개인영역으로는 방만 제공하고 공용시설은 한데 몰아서 공유하도록 하지만 으레 건물 내부에서의 공간배분 문제로 접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은 이러한 공용시설을 어반 쉐어(urban share), 어반 스페이스(urban space)로 확장한 개념이다. 훨씬 재미있고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다.

 

민현식: 요즘 목욕탕이 많이 없어진 이유는 집집마다 욕실이 있기 때문이다. 동숭동에 있는 목욕탕이 사무실로 변한 것도 근처 시민아파트를 헐면서 이용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고. 정기용 선생이 무주의 동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든 것도 굉장히 중요한 아이디어였다. 사는 사람들의 의식주 해결 방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상당히 기발한 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10.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

김봉렬 : 대상지에 집합주택이 형성되면 어떤 사람들이 살 것 같은가? 왠지 4인 가구는 살 것 같지 않다.

 

민현식 : 요즘엔 4인 가구 자체가 없지 않나 싶다.

 

김봉렬 : 부부만 있는 가구, 1인 가구들이 도시에 가까운 쪽을 주로 찾는데 이 사람들 사는 걸 보면 주말에도 거의 밥을 안 해 먹는다.

 

박인석 : 2010년 센서스상으로도 부부와 자녀가 포함된 가구가 반이 안 된다. 자녀가 있든 없든 ‘부부’가 포함된 가구를 다 합쳐도 전체 가구의 56% 정도로 절반이 겨우 넘는 수준이고, 이것도 금방 50%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이미 부부가 있는 가구가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이 됐다.

 

민현식 : 4인 가구라 조사된 가구라도, 자녀가,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다른 곳에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현재의 일반적 가족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김봉렬 : 홍콩은 오래전부터 부엌이 없더라. 음식을 사와서 함께 먹을 수 있는 장소, 식당 정도만 있다.

 

민현식 : 사실은 식당도 거실을 겸하는 게 대부분이다.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려면, 앞서 얘기한 거주민들의 성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곳의 ‘식당’들은 점심시간에 저렴한 ‘식단’을 팔고, 저녁에는 점심메뉴가 없어진 ‘주점’으로 바뀐다. 이와 같이 시간적인 쉐어(share)는 주택에서도 이루어 지고 있다. 내 친숙한 친구 두 분은 ‘방’ 하나를 빌려서, 주중과 주말로 나누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쯤에 오면 우리가 정의한 ‘기능’들이 현대에 얼마나 변화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하리라 본다.

 

김봉렬  : 방 하나를 2교대로 쓰는 것은 오래전 구로공단에서 벌어졌던 상황이기도 하다.

 

민현식 : 언젠가 TV에서 본 소위 ‘닭장집’은 낮에는 부모가 쓰고, 밤에는 자녀들이 쓰는 집이었다. 부모가 밤에 장사를 하고 자녀들은 낮에 학교에 가게 되니, 밤과 낮의 집의 사용자가 바뀐다.

 

 


11. 낯선 도시와 익숙한 한옥의 만남, 그리고 그것의 진화

송인호 : 물론 새로운 유형의 주택과 주택들의 집합은 필요하다. 그러나 도시 한옥은 근대의 도시조직에 전통적인 한옥 유형이 적응하여 진화된 도시주택유형이다. 도시 한옥 자체로서도 그 시대에 적합한 주거형식이었고, 도시 한옥들이 모여 만든 동네도 참조할 만한 도시조직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말 빠른 속도로 지가가 상승하고 도시가 불균형한 상태로 개발되면서, 도시와 한옥이 유지해왔던 변화의 흐름이 크게 위협받게 된 것이다. 만일 그 변화가 정상적인 속도로 진행되었더라면, 그리고 바라건대 우리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왔다면, 아마도 도시 한옥 또는 단독주택을 기본으로 하되 공유영역과   집합의 질서로 조직된 도시 주거지로 진화된 모습은 아닐까. 집합이란 것은 물리적인 집합일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의 네트워크일 수도 있겠다. 그런 정도가 주어진 과제일 것 같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리 착한 이웃끼리 만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땅값이라는 현실도 있고 다른 지역과의 불균형의 구조도 있고, 그래서 나는 반드시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의 개입은 자본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법제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도 있고, 창의적인 인력을 제공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김봉렬 : 조금 좁혀서 얘기하면 이 땅은 도시 한옥이 있다는 게 특별한 조건이다. 이 땅을 고른 이유도 어려운 문제 하나를 내주기 위해서였다. 도시 한옥의 위상은 어떠한지, 땅의 가치를 높이는 쪽, 즉 경제적 가치를 따졌다면 일찌감치 없어져야 하는 건데 남아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앞으로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응모자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송인호 : 사실은 개발하기 어려운 조건이라서 남은 것이다.

 

박인석 : 과소 필지에 지어진 것만 남았다고 봐야 한다.

 

송인호 : 비슷한 조건이었겠지만 북쪽 필지는 길에 면해 있어서 먼저 개발이 됐을 거다.

 

 


12. 사람 사는 동네로서의 가치

김봉렬 : 개발이 안 될 것만 남았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앞으로의 운명은? 현재 성북구에만 1,600여 채가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나?

 

송인호 : 그래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소위 개발업자의 입장에서는 이익만 발생한다면 아무리 좋은 한옥이든, 풍경이든, 공동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골목이든 다 지워지고 말 것이다. 공공의 역할이라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나, 도시의 정체성이 담겨있는 장소들을 지켜 주는 것 아닌가? 이 지역에 대하여 공공이 투자한다면, 거시적으로 보면 가치가 발생할만한 지역이다. 2000년에 북촌 가꾸기 사업을 시행한 이후, 북촌의 한옥 1,000채는 다세대 주택으로 대체되지 않고 지켜졌다.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는 있으나 북촌과 서울 도심의 전체적인 가치는 상승되었다.

 

민현식 : 북촌에도 문제가 많다. 생활하는 주택으로서의 한옥이 아닌 상업시설로 전환된 한옥이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24시간 생활하는 주민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것은 서촌도 마찬가지다. 밤이 되면 무서워지는 동네가 되어버린다. 소위 도시공동화 현상이 주거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번 공모전에 사는 동네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이유이다.

 

송인호 : 말씀하신 대로 지난 10여 년 동안 북촌에는 공동체를 위한 배려와 정책이 없었고,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층위에 대한 존중도 부족했다. 북촌의 한옥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아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지금 지적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북촌과 서촌의 경험과 반성을 바탕으로 한옥이나 오래된 골목과 같은 건조환경과 더불어 그것을 지탱해 온 공동체를 회복하고 지속하는 체계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

 

민현식 : 북촌의 풍경이 달라졌다. 예전엔 골목길에서 할머니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관광객의 행렬이 그것을 대신한다. 물리적인 공간은 남겨졌으나, 생활이 바뀐 골목길은 ‘그 골목길’이라 할 수 없다.

 

박인석 : 그게 항상 부딪히는 딜레마인데 해결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도시 한옥은 서울시의 단독주택 필지 전체 중에서 몇 퍼센트밖에 안 되는 비율을 차지한다. 이 얼마 남지 않은 도시 조직과 건축 유형을 굳이 현대에 맞는 삶의 양식이나 주거를 찾는다는 이유에서 없애야 할까. 그것은 다른 곳에서 찾으면 되는 것 아닐까. 이 자체는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또 다른 더 큰 가치를 향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지원을 통해서든 이것은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갖는 가치 때문에라도 상업화될 우려가 있다. 주거를 위한 집 대신 모양만 유지하는 박물관 같은 것으로 변해 버릴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공공의 개입으로 사람들이 사는 도시 한옥, 퍼블릭 한옥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도시 한옥은 가치 측면에서라도 그대로 유지하는 게 합리성이 큰 방향이고, 그것을 사람이 사는 풍경으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정책이 개입해야 할 지점이다. 물론 그랬을 때 그 방향에서 보여줘야 할 시범적 설계란 도대체 무엇인가가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김준성 : 개인적으로 공모전 안들이 꽤 현실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건설업자와 개발업자가 짓는데 건축가의 손을 빌려서 잘 짓는 정도의 것이었으면 한다. 그러면서 도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건드리면 더 좋을 테고.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지하철 안에서 은평구 한옥 마을 분양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걸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한옥 동네, 보이지 않는 질서로 나열된 한옥과 찌그러진 부재와 구불구불한 골목, 그리고 집과 집, 집과 골목 사이의 관계들이 나타나 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개량 한옥으로 도시 구조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와 관련한 새로운 제안도 재미있을 것 같다.

 

김봉렬 : 쓸어버리고 새로움을 만드는 것은 손쉬운 해결이다. 이런 조건을 준 것은 기존의 상황, 밀도와 용도들을 존중하면서 어떤 해결책을 찾아내느냐, 이런 게 사실은 숨겨져 있는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존중은 꼭 보존의 문제라기보다 조금 바꾸든지, 조금 솎아 내든지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13. 다세대, 다가구, 원룸, 도시형 생활 주택

박인석 : 대상지에 비워진 땅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김봉렬 : 유료 주차장으로, 주차장의 필요성도 조건이 될 것이다.

 

박인석 : 일본에서는 차고지 증명제 때문에 이런 유료 주차장이 동네마다 있다. 일본에서는 도시를 다공질화해야 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이 그런 효과가 있다. 차고지 증명제 등으로 주차장 확보가 의무화되어 주차장 수입이 일정 수준 보장된다면, 다가구, 다세대 주택을 함부로 지으며 사업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보다 그쪽을 택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김봉렬 : 다세대, 다가구 주택의 탄생과 미래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 달라.

 

박인석 : 다세대 주택이 먼저다. 다세대 주택을 처음 만든 동기는 아주 나이스(nice)하다.  1984년에 건축법에 다세대주택이라는 유형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때까지는 대부분의 단독주택이 문간방에 세를 주거나 미니 2층을 만들어서 아래층에 세를 놓는 형태였다. 잘 사는 집 몇 채 빼고 거의 모든 단독주택들이 2가구 이상의 다가구 동거 패턴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은 주택 불경기 때문에 주택건설이 매우 부진한 상태였다. 실제로 주택보급률이 70%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묘수로 탄생한 것이 다세대 주택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독주택에 세를 주어 여러 가구가 사는 것은 불법이었다. 단독주택은 모두 1가구 주택으로 허가를 내줬기 때문에 미니 2층을 지을 때도 마치 2층집인 것처럼 허가를 받은 후 계단을 막아서 세를 주는 편법들을 썼다. 그것을 양성화시켜서 주택 건설량을 늘리려는 의도로 만들어낸 것이 다세대 주택이다. 다세대 주택이란 이름으로 한 필지에 여러 세대용 주택을 지을 수 있게 했으니 하위 주택시장이 붐업(boom up)됐다. 20세대 이상은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라 사업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이것을 피할 수 있는 19세대까지 다세대주택으로 지어졌다. 이게 1980년대 말 주택경기 상승기에 과잉 공급되기 시작하자 1990년에 다시 만들어진 주택유형이 다가구 주택이다. 다세대 주택과 거의 같은 것을 세대별로 분양은 못 하고 임대만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다가구 주택은 단독주택이고 다세대 주택은 공동 주택이다. 다세대 주택은 부분 등기가 가능한, 분양이 되는 집이고 다가구 주택은 부분 등기가 불가능하고 주인이 살면서 세만 줄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다가구주택도 전부 담장조차 없는 빌라처럼 짓는다. 그것도 원룸으로.    

 

김봉렬 : 다가구 패턴이 진화한 것이 원룸 형식인가?  

 

박인석 : 19세대까지 가능하니 더 잘게 쪼개서 세대 수를 늘린 것이다. 초기의 다가구 주택은 대부분 3~4인 가족용으로 지었는데, 1인 가구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원룸으로 방향을 틀었다. 
 
김봉렬 : 서울의 인구는 20년 동안 정체되어 있는 상태고, 반면 가구 수는 막 늘어났다. 1인 가구가 많아진 것이다. 아마도 그것에 맞춰서 나온 것이 도시형 생활주택 등일 것이다.

 

박인석 : 도시형 생활주택이란 것도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단지형 연립(단지형 다세대)이고 또 하나는 원룸형이다. 도시형 생활주택 입법은 두 가지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1인 가구가 늘어나니 빨리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차장을 완화해 주면서 원룸을 장려하였다. 또 하나의 목적은 단독주택지를 언제까지 열악하게 놔둘 수 없다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놀이터도 없고 주차장도 전쟁터인데 그것을 해결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그래서 300세대 이하의 단지를 만들어서 해결하라는 것이 단지형 연립, 단지형 다세대이다. 작은 단지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이다. 그게 인기가 없어서 다행이지 불붙기 시작한다면 정말 큰일 날 일이다. 아직은 원룸만 붐이 좀 불다가 공급 과잉으로 멈칫한 상황이다.

 

김봉렬 : 우리가 하는 게 그거 아닌가?(웃음)

 

박인석 : 이 정도 규모의 블록 단위로 도시 조직을 유지하며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300세대는 엄청난 규모다.

 

 


14. 젊은 건축가의 전문가적 대안을 기대하며

김봉렬 : 마지막으로 젊은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이번 공모전은 ‘젊은 건축가를 위한 설계 공모전’이란 타이틀을 달았다. 특히 이로써 학생 공모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젊은 건축가는 건축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민현식 : 역차별이 있는 것 같다.(웃음)

 

송인호  : 학생도 젊은 건축가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김봉렬 : 학생은 건축가라기 보다 예비 건축가라고 보았다. 어렵게 5년제 학제가 되었지만 거의 모든 대학이 50명 졸업에 10여 명 정도의 설계업 종사자를 배출하고 있다. 그 10명도 정착 못 한 채 부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젊은 건축가들에게 희망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시장에서 살아남은 친구들 얘기이긴 하지만 젊은 건축가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뭐든 안 가리고 일을 한다. 설계뿐만 아니라 기획, 편집 등등 다양한 일을 해 나가면서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제도화된 건축가와 많이 다르다. 이처럼 설계업을 기피하기도 하지만 또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그야말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세대가 아닌가 한다. 한쪽에서는 좌절과 도태로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서 버틴 친구들은 기존의 건축가 개념과는 다른 개념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젊은 건축가의 기준을 45세로 잡고 있는데, 여기 계신 분들은 45세 때 거의 입지를 굳히지 않았나. 어쩌면 젊음이란 게 10년 이상 연장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젊은 건축가를 통해 기대하는 것을 짤막하게 적긴 했다. 젊음의 특권은 도전과 질문으로 뭔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기성 세대들은 그것에 기대를 갖는다. 그래서 전체 과제도 스스로 물어보고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조건들을 풀어 놓은 것 같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겠지만, 이번 공모전이 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좋은 질문을 만들어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박인석 : 질문이 오지는 않을까? 이 공모전의 젊은 건축가는 몇 살을 기준으로 하는지.(웃음)

 

김봉렬 :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겠지.(웃음)

 

박인석 : 제출물이 A1 사이즈로 4장이다.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김종규 : 계획한 도면 넣고 설명을 좀 넣으면 꽉 차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많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신 설계설명서는 과감히 생략했다. 설계설명서의 내용은 도판에 표시하면 되니까.

 

김준성 : A1 사이즈 4장에 배치도, 평면도, 입면도를 떠나서 자유롭게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인지. 젊은 건축가들은 표현 방법들도 나름 개성이 있을 것 같다.

 

김종규 : 좋은 아이디어를 가장 트래디션(tradition)하게 표현해 달라는 게 나의 요구였다.

 

민현식 : 나 역시 그게 좋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보여주면 된다. 김종규 선생, 박인석 교수 정도면 도면을 읽어 다 알 수 있지 않겠나. 엉성한 도면에 쓸데없이 사족을 늘어놓는 ‘비전문가’를 배제하자.
끝으로 책을 읽다가 쓸 만한 내용이 있어 소개할까 한다. 심사하는데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론의 어느 각주에 있는 말을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변용한 것이다.
‘우선, 이 집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둘째, 이 집이 지어짐으로 해서 새롭게 형성되는 사회적 관계는 무엇인가. 셋째, 이 집을 지으면서 동원된 새로운 기술과 재료는 무엇인가. 넷째, 이 집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이고 정신적인 것은 무엇인가. 다섯째, 이 집의 생산방식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이 집으로 하여 생활의 질은 얼마나 향상 되었는가’ 등 이다.

 

김봉렬 : 수많은 건축 공모전이 있다. 그래도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는 좀 더 명확하고 전문가다운 것이 되길 원한다. ‘젊은 건축가’라는 말에 프로페셔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그래서 제출 도서도 좀 프로페셔날하게 받기를 원했다. 즉 “도면으로 이야기하라!”
주최하는 입장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좋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혜안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또 오늘 이 자리의 말씀들이 참가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기를 선생님들께 부탁 드린다. 마지막으로 주최측을 대표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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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차, 나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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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4년 9월 28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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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경계, 이 시대의 집합도시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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